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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an 04. 2024

출산준비를 위한 중고학(1)

(임부복 편)

드디어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니 나라에서 지원금이 내려와서 내 돈을 내고 병원을 가는 일은 줄었다. 나는 출근을 하고 업무도 그대로 했다. 다만 두 번의 시험관 시술의 부작용으로 병을 얻었다. 비만. 몸무게가 급격히 늘었다. 시술을 하면 이주일은 누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은 점점 후덕해져 갔다.


   12주 차, 친해진 원무과 직원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난임 병원을 졸업했다. 이제 한 시간 거리 난임병원에서 집근처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정기적인 검사. 나의 일정에 정기 검진이 추가되었다. 나이 많은 산모여서 돈이 더 드는 검사가 이것저것 있었지만 패스했다. 다시 원래 속도대로 돈이 모였다.


  그러던 즈음 배가 점점 나왔다. 출근은 해야 하고 배는 불러오는데 입을 옷이 없었다. 임부복을 사야 했다. 임신은 10개월이다. 그중 4개월은 평상복을 입어도 상관이 없다. 남은 6개월... 뱃속의 아이도 나도 편하려면 임부복이 필요하다. 


  그래서 백화점에 갔다. 입고 출근하기 딱 좋은 임부복 매장이 있었다. P브랜드. 이미 배가 나만큼 나온 여자가 친정엄마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과 옷을 고르고 있었다. 나도 매장에 들어갔다. 사방으로 늘어나고 배 부분은 부드러운 천이 연결된 바지는 매우 편해 보였다. '힘들게 임신했으니 나도 좋은 거 하나 살까' 하고 보니 청바지 가격이 10만 원이 넘었다. 음... 나는 딱 6개월만 입으면 되는데... 10만 원이라... 조금 고민하다가 내려놨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같은 브랜드 옷을 뒤졌다. 인터넷과 매장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고거래 사이트로 간다. 거기서 P브랜드 옷을 검색한다.


  바지는 상의로 가리면 티가 나지 않으니 바지는 사이즈에 맞는 중고로 사기로 했다. 일단 사이즈에 맞는 것 중 저렴하게 많이 파는 사람과 거래를 했다. 대신 P브랜드 상의를 찾았다. 있다. 다른 지역에도 있고 동네에도 있고 여기저기 있었다. 택배 상자가 속속 도착했고 그중에 입을만한 옷을 골랐다. 보세 브랜드 하의와 P브랜드 상의다. 모두 구매하는데 5만 원 정도 들었다.

  중고로 구입한 임부복은 유용했다. 바지는 보풀이 있는 것도 있고, 고무밴드가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어차피 긴 상의로 가리면 안 보인다. 버려야 할 옷을 끼워 판매한 사람과 거래한 것도 있지만 싸게 샀고 집에서 입으면 되니 그러려니 했다. 반품은 과정이 번거롭고 또 다른 스트레스라 생각도 안 했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출산기념으로 펑퍼짐한 상의를 매대에서 하나 샀다. 대신 출산 후에도 입을 수 있을 만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8월,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바로 둘째를 계획했다. 임부복은 임신하면 다시 입기 위해 깨끗이 세탁해서 보관하고 있었다. 정말 고맙게도 둘째는 마음먹은 후 바로 임신했다. 하지만 출산 예정일이 한겨울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여름 임부복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다음 해 여름이 되기 전, 임부복을 꺼냈다. 내가 산 임부복 중 긴 바지를 남기고 반바지와 상의는 모두 중고로 팔았다.


'일괄 거래 원합니다. p브랜드 임부복 상의입니다. 저도 중고로 샀지만 아시다시피 임부복은 한 철만 입습니다. 둘째를 낳을 계획으로 세탁하여 보관하고 있었는데, 출산일이 겨울이어서 판매합니다. P브랜드 상의 전부 택배비 포함 3만 원입니다. 필요하시면 사용감 있지만 편안한 임산부용 반바지는 덤으로 드립니다'


 물건은 즉시 나갔다. 나는 첫째를 임신했을 때 봄부터 임부복이 필요했다. 때문에 첫째 때 중고로 산 임부복 중 집에서 입을 만한 레깅스류의 바지는 배가 늘어나고 고무줄이 늘어나고 보풀이 있어도 가지고 있다가  입었다. 그리고 여름 임부복을 판매한 금액으로 겨울 임부복을 샀다. 나는 두 아이를 각각 한여름과 한겨울에 낳았다. 서로 다른 계절의 임부복을 입어야 했지만 이런 방법으로 임부복을 사서 입는데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들긴 했다. 그런데 어쩌랴. 임신하고 집에만 있었으니, 나는 돈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에도 출퇴근용 임부복을 중고로 사서 입었고 나는 돈이 들지 않았다. 출산준비도 그렇게 했다.

  



임부복을 사고팔 때 터득한 중고학의 이론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사용감이 많은 상품은 판매가 아니라 덤으로 넣는다.

2. 중고물품은 1차 중고와 2차 중고로 나뉜다. 구매자에게 솔직히 자신 직접 구매한 것인지 중고로 구매한 것인지 밝힌다(이것은 유모차 중고거래학 개론에서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3. 자신이 판매하는 이유를 적는다. 가격은 조금 아쉬울 만큼 적는다. 싸면 싸다고 의심받고 비싸면 중고거래하는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다(왜 중고거래를 하는지 생각해 보라. 한몫 잡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자, 대신 시세대비 너무 저렴한 고가 물건을 반드시 직접 거래하라).

4. 이왕이면 택배비를 포함해서 파는 게 낫다(에누리도 택배비만큼만 심리적 비용의 마지노선으로 정하라)

5. 거래 기록이 중요하다. 꾸준한 거래와 드림기록이 있어야 구매자가 안심하고 내 물건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할인 쿠폰이나 서비스 쿠폰거래보다 직접 물건을 거래한 기록이 많은 경우 다음 거래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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