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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an 12. 2024

그녀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매우그렇지않은당신을 처리하는 법)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두 아이는 아파서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도 오전 반차만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오후에 집으로 와야 한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직장까지 다섯 번의 신호를 받는다. 신호대기 중에 갑자기 코가 시큰하다. 핸들에서 손을 떼서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 출근 안 하는 방법은 없나?'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고 다시 눈물이 흐른다. 운전을 하면서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초록색 신호에 선다. 다시 30초 후에 신호가 화살표로 바뀌면 나는 직장에 도착한다. 내가 박을 용기는 없다. 그냥 누가 실수로,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해서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을 하기 싫었다. 일을 하다가 전화가 울리면 손이 떨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는 게 더 슬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직장 외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단지 내가 수습을 해야 했는데, 상사는 그런 나를 나무랐다.

  " 아니, 기구랑 위원회의 차이점 몰라요?"

  "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 부장 데리고 와요. 이거 내가 일일이 다 설명해 줬는데 왜 이런 식이야?"

  업무 중이었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들리는지 신경 쓸 새도 없이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면 전화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물론 나도 안다. 이 사람은 지금 승진에 목을  있다. 인사를 처리하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어제는 상급기관 담당자가 상사에게 연락을 해왔다. 전날 나에게 모욕을 줬던 그 사람도 현재 감사기간이라고 했다. 감찰부서에서 내가 제출한 사안에 대해 기관에 질의를 했는데, 담당자가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이 다음날 아침,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업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 말한 것이. 상급기관의 감사시즌에 상사의 인사시즌을 합친 뒤끝은 오래갔다.


  내가 처리할 일은 내부에서 터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만 하면 된다.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정부기관에 보고하고 연계기관에 보고하면 되는 일이다. 첫날은 회의를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내부 회의록과 보고서를 쓰고 승인을 받았다. 상급기관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상사가 보고서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1층으로 오라고 했다. 이미 회의를 한 일이라 10분이면 끝날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들었다.

 " 결재하기 전에 검토할 수 있게 파일 첨부해서 메시지 보내세요."

이날 퇴근 시간이 지나서 나는 상급기관에서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아침 상사는 기관 담당자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다음날 보고서 완료 메시지를 첨부파일과 함께 보내니 1층으로 내려오라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부장을 함께 데리고 오라고 했다. 부장도 지난번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안다. 다시 셋이서 한 시간 협의를 했다.

 " 내가 이렇게 쓰라고 했어?"

 " 부장이 적은 참고해서 작성하고 완성되면 가지고 와요."

완성된 결과를 가지고 내려갔다. 부장이 상사의 코멘트를 꼼꼼히 쓴 파일을 참고하여 쓴 글이다.

 " 누가 이렇게 쓰라고 했어? 사건 접수한 사람 데려와, 왜 일을 이딴 식으로 하는 거야?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자기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틀렸다니 미칠 노릇이다. 사건을 접수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 이렇게 쓰면 될 것 같은데요?"

 " 아니 사건의 정황이 이게 맞냐고, 뭔가 빠진 것 같은데?"

 " 이게 맞습니다. 저희가 아는 건 이게 다예요. 나머지는 개인정보라 알 수 없어요."


  퇴근하면 일은 끝났지만 스트레스는 끝나지 않았다. 집에서는 예민한 엄마와 날카로운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극한의 탈모를 겪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맥주를 한잔씩 하고 잤다. 늦은 밤 티브이 보며 술 마시기.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었다. 친구 모임에서는 직장에 대한 험담이 쌓여갔다. 나는 점점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인사 시즌의 마지막인 자체 평가 기간이 되었다. 조직의 관리자나 상사에 대해 직원들이 평가를 내리는 시간이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겪은 스트레스와 모멸감을 어떻게든 갚아주고 싶었다. 내가 설문에 매우 그렇지 않다고 모조리 체크하면 이 사람은 점수가 형편없이 깎인다. 인원수가 적은 집단이니 나의 평가결과는 분명 영향이 있을 터였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최고의 복수는 무엇일까? 나에게 가장 최선의 이익은 무엇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평가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 나는 결정을 내렸다.


 - 관리자는 조직의 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 매우 그렇다

 - 관리자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까? - 매우 그렇다.

 - 관리자는 직원과 협업하여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까? - 매우 그렇다

 - 관리자는 직원들과 소통하며......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이 사람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우 그렇지 않다로 체크하는 것이다. 아니면 여론을 조성하여 이 사람의 평점을 깎아내릴 수도 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며 자살 충동을 느꼈던 사람, 고소를 준비했던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승진을 원한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와 동료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은 이 사람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나와 한마음으로 이 사람에게 매우 그렇다는 고가를 주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다음 해 그녀 승진했고,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갈 예정이었다. 다시는 비슷한 일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 업무를 배제해 달라는 신청서를 냈지만, 그녀는 같은 일을 주었고 조직이 개편되면서 다른 업무도 추가되었다. 다른 동료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송별회 때 그녀는 나를 보고 '미안하다'라는 말을 건넸고, 나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가고 우리는 남았다. 업무는 작년보다  더 늘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녀가 없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는 반감되었다.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은 탓에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좌절도 지만,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은 일을 처음 할 때만큼의 긴장감은 없었다. 그녀가 경력을 통틀어 가장 원하는 것을 나는 이루도록 도와주었고, 나도 원하는 것을 얻었다. 전근 간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길 바란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전근 간 곳의 직원들도 행복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승진에 목매던 예민한 상급자아닐 테니까.


  그리고 당신에게

  당신이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여 얻어낸 그 자리에서 매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이뤄드렸습니다. 만약 당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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