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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an 15. 2024

화천의 매력에 빠진 날(1)

작년 겨울, 모처럼 주말에 가족과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맘카페를 들락거리다가 중고거래에서 눈에 띄는 물건을 발견했다.

'화천 산천어 축제장 근처 펜션을 양도합니다.'

산천어 축제라... 둘째는 물고기를 매우 좋아한다. 방학이니 한번 가볼까? 무엇보다 이번주말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글을 클릭했다.


' 산천어 축제장 근처 뷰가 좋고, 예쁜 펜션입니다. 사정으로 못 가게 되어 급하게 양도합니다. 예약일은 오늘입니다. 4만 원 할인하여 12만 원에 드립니다. 화천군 펜션 숙박권이 있으면 산천어 축제 입장은 무료입니다.'


누워서 스마트폰과 눈 맞추던 남편을 흔들었다.

" 남편, 우리 산천어축제 갈래? 누가 맘카페에 펜션 양도글을 올렸는데 둘째가 좋아할 것 같아."

"숙박일은 언제야?"

"오늘이야."

"확실히 양도되는지 거래자랑 펜션 주인한테 확인해 봐."

나는 판매자와 채팅을 하고 연락처를 받아 펜션 주인에게 양도가능 하다는 확인을 받았다. 12만 원을 이체하고 바로 짐을 쌌다. 오후 1시. 우리는 강원도 화천으로 출발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수많은 터널을 지나 세 시간 만에 화천에 도착했다. 그리고 축제 장소를 돌고 돌아 주차를 하고 행사장에 들어섰다.

430분. 6시부터 밤낚시가 시작인데 지금 들어가면 온전히 다 놀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하시며 펜션 주소를 확인하고 입장권을 끊어 주셨다.


  한 시간 반 동안 내가 한 마리를 잡고 둘째가 한 마리를 잡았다. 첫째는 운영진이 산천어를 구멍에 부을 때 밖으로 튀어나온 산천어를 한 마리 얻었다. 5시 30분이 되니 행사장에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기온이 내려갔다. 산천어를 잡는 재미보다는 아이들의 컨디션이 중요하니 낚시는 그만두고 숙소로 출발했다. 행사장 근처라던 숙소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산을 넘어 25분이나 걸렸다. 숙소는 깔끔하고 예뻤다.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파로호 주변이라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산책했다.

 아름다웠다. 호수도 풍경도, 조용한 아침 공기도 신선했다. 아침에 눈이 내려 바닥에 살짝 쌓였다. 


  10시 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눈발이 날린다. '오, 그럼 더 분위기 좋겠는데?' 즐겁게 짐을 싸고 11시가 조금 넘어 산천어 축제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이제 막 동네를 벗어났을 뿐인데 눈발은 맹렬해졌다. 산 중턱까지 올랐을 때,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은 수동모드로 운전을 시도했지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한쪽은 산비탈이고 다른 쪽은 낭떠러지다.


 미끄러졌다가는 산에 박거나 아래로 떨어진다.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부러웠다. 차 안에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여기 파로호 넘어가는 고개인데, 눈이 많이 와서 차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견인 좀 해주세요."

짧고 단 대답이 돌아왔다.

"거긴 지금 아무도 못 들어가요."

"아, 방금 D화재 레커는 지나갔는데...."

"갈 수는 있는데, 차를 끌고 나올 수는 없어요."

"...."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 여기 파로호 가는 고개길인데요, 제설차를 보내주세요. 아이가 둘인데 눈 때문에 산 중턱에서 차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 지금 제설차가 먼저 신고가 들어온 곳에 출동을 해서 거기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

휴대폰을 보며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구조 전화를 하는 것도 그만뒀다. 보험회사든 제설차든 언제 올지 모른다. 차에 히터도 계속 틀어놔야 하고 핸드폰 배터리도 혹시나 하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아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은 보조배터리가 있다며 아이들에게 자기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우리 차는 겨울용 타이어로 교체한 것인데, 스노 체인은 생각 못했다고 남편은 아쉬워했다. 산을 내려오던 내려오던 4륜구동 SUV외제차가 방향을 바꾸다 멈췄다. 남편은 그 차에 가본다고 나갔다. 주변에는 눈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름답지만 무서웠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아이들에게 차에 있던 자와 물을 주었다.

" 엄마, 우리 산천어 잡으러 언제 가요?"

"눈이 많이 내려서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우리  과자 먹으며 기다리자."

 

남편이 돌아왔다.

"4륜구동 SUV도 여기서는 소용이 없네. 저 앞에 조금 더 가면 벤츠도 한대 서 있어, 한 100미터만 더 가면 내리막길이라서 이 구간만 지나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남편은 눈도 치워보고, 바퀴아래 물건도 깔아보는 등 운전 방법을 달리하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차는 왼쪽 오른쪽으로 포물선을 그릴뿐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밖에 나가 차를 밀어볼까 했지만 남편은 그게 더 위험하다고 아이들과 차에 있으라고 했다. 100m만 가면 되는데... 눈이 그칠 기미도, 누군가 우리를 돕기 위해 올 엄두도 안나는 상황이었다.


  때였다. 마을버스가 한대 지나갔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버스 타이어 자국 위로 차를 옮겨."

"응?"

"버스 타이어 자국 위로 차를 옮기라고, 눈이 쌓기 전에 버스 타이어 자국으로 차를 옮겨."

남편은 차 방향을 바꿔 버스 타이어 자국 위에 올랐고, 그 자국을 따라 나왔다. 탈출하면서 남편은 창문을 내려 4륜구동 SUV를 보고 말했다.

" 저희가 지나간 자국 밟고 오세요."


  리는 앞에 멈춰있던 차들을 지나쳤다. 고개를 넘자 그때부터는 버스타이어 자국을 쫓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신호대기 중에 우리 뒤에 따라오던 차들과 만났다. 차들은 운전석 창문을 내려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우리는 다행이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저 앞에서 제설차가 오고 있었다.


  한 겨울의 화천은 정말 매력적이다. 산천어축제와 멋진 설경을 볼 수 있는 겨울 최고의 명소다. 하지만 우리는 작년 오늘,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 눈 오는 산에서의 고립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차에 아이들에게 줄 물과 과자가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잘 기다려준 아이들도 고맙고, 제 시간에 운행해 주신 버스운전기사님도 고맙고, 물과 과자를 챙긴 나도 고맙고, 우리 앞에서 정보 교환하며 남편과 이야기 나눈 4WD SUV차량 운전자도 고맙고, 그리고 마냥 기다리지 않고 안전하게 나올 수 있게 운전한 남편도 고마웠다.


  그리고 화천의 눈 앞에서는 그 어떤 좋은 차도 초라해질 뿐이다. 비싼 차도, 오프로드를 마음것 달릴 수 있는 외제차도 화천의 눈길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눈발을 헤치고 나아가며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봉고차, 버스, 트럭이 더 멋있게 보이는 것이 화천의 매력이다.

  으로 가는 길에 이 많이 내렸지만, 화천을 떠나는 차들로 도로 위의 눈은 많이 녹아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우리는 일 년 만에

화천의 겨울과 조우했다.


' 어서 와, 근데 너희는 처음이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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