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우리가 직접 준비했다. 우선 펜션은 평지에 있는 곳으로 산을 넘지 않는 거리 10km 내외 인 곳을 골랐다. 두 번째, 오후 낚시를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해서 오전에 출발했다. 세 번째, 신발이 젖을 수 있기에 여분의 신발과 양말을 준비했다. 차가 중간에 막히긴 했지만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다. 집에서 세 시간.
이번 산천어 낚시에서는 두 시간 동안 한 마리만 잡았다. 그래도 아주 큰 녀석을 잡았기에 만족했다. 우리는 산천어를 잡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에 놓아주려고 했는데 행사장을 나오는 길에 한 가족을 만났다. 창원에서 왔지만 아침부터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말을 듣고 살려주려던 산천어를 건네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펜션으로 출발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차가 막힌다. 막힌 길을 피해 간다고 샛길로 들어간 차들이 다시 2차선 시내 도로로 합류하게 되면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13분 걸리는 숙소를 50분 만에 도착했다.
그래도 괜찮다. 내일 폭설이 내려도 우리는 걱정 없이 빠져나올 수 있다. 펜션은 산을 넘지 않는다. 북한강이 보이는 편평한 도로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수건이랑 휴지도 넉넉하고 집은 깨끗했다. 다만 얇은 창문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고 두꺼운 커튼이 화천의 겨울바람을 모두 막아주진 못해 아쉬웠다.
다음날 우리는 지난번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짐을 쌌다. 출발할 때 작년처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지만 여긴 평지라 괜찮다. 길에서 오늘까지 화천 우체국에서 산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우린 시간 여유가 있으니 산타우체국에 들러 추억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행사장을 가는 길에 마침 저 너머로 빨간 산타우체국이 눈에 들어온다. 이쪽으로 오길 참 잘했다. 남편에게 저기 들러 사진 하나 찍고 오자고 했다. 그리고 주차를 하려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마침 공터에 빈자리가 있다. 바닥에 벽돌이 하나 있어서 그것만 넘으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차가 공터로 들어서는데 덜컹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리니 기름냄새가 났다. 차 바닥을 보았다. 기름이 새고 있었다.
" 남편 우리 차 오일탱크에 구멍이 난 것 같아."
"농담하지 마 무슨... "
우리가 벽돌이라고 생각한 것은 성인남자 허벅지만 한 굵기의 콘크리트 파편이었다. 그 파편이 차의 아랫부분을 찌그러트렸는데, 찌그러진 부분이 벌어져서 그 사이로 기름이 줄줄 새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눈은 펑펑 쏟아지고 있다.
바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20분 뒤 보험회사 담당자분이 도착했다. 남편은 쪼그리고 앉아 보험회사 담당자분과 한참을 대화했다. 결과는... 차를 견인해서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화천에서는 고칠 수 있는 곳이 없단다. 우리 집에서 화천까지는 3시간 거리. 집까지 차를 견인할 수는 없으니 차를 수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춘천으로 차를 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견인차를 타고, 나와 아이들도 바로 춘천으로 가야 한다. 남편과 나는 회의를 했다.
"캐리어 하나, 여행가방 하나, 그리고 카트 한 개에, 음식을 넣은 가방이 하나 있어. 근데 이걸 다 가지고 갈 수 없어. 캐리어 하나에 당장 필요한 것을 모두 챙겨야 해."
"카트에 넣으면 안 될까? 그냥 먹는 건 버리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고 싶은데."
"카트까지 챙기면 짐이 많아져, 애들도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그럼 너무 힘들어. 일단 버스정류장으로 가자."
산천어 낚시는 접어야 했다. 아쉬워할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얘들아, 차가 고장 났는데 여기서는 고칠 수 없대. 그래서 우리 산천어 낚시 못해."
"여기서 낚시터는 가깝잖아요. 낚시하러 가요."
"그런데 필요한 짐을 다 가지고 가기는 멀어. 차를 여기 세워둘 수도 없고, 기름이 없어서 차가 못 움직여."
"차는 여기 두고 낚시하러 가요."
"차는 지금 다른 기사님이 춘천으로 끌고 갈 거야. 우리끼리 낚시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짐을 다 들고 춘천으로 가야 해. 그럼 너무 힘들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다음에 또 오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붕어빵과 물고기 모양 낚시찌 등을 사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다행히 화천 시외버스정류장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작년에 힘들게 고갯길에 내려와서 밥 먹던 분식점 맞은편이 시외버스 정류장이니까... 낯이 익다. 정류장에 들어가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누군가 가게 앞의 눈을 쓸고 있다. 그런데 쓸고 나서 뒤돌아서면 그 위에 눈이 다시 쌓이고 있었다.
"삼십 분 뒤에 춘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당신은 애들 데리고 일단 춘천으로 가. 내가 레커차를 타고 정비소에 차를 맡긴 다음 거기로 갈게."
"바로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는 정비소는 없을 거야. 일단 차를 정비소에 세워두고 와야 해. 먼저 도착하면 연락해."
레커차 기사님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은 차로 가고 나는 아이들과 터미널에 남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버스를 탔다. 잠시 뒤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출발했어. 당신은?"
"나도 방금 출발했어. 버스 타고 남춘천역으로 가."
"알았어."
눈발이 거세다. 그래도 난 괜찮다. 40분 정도면 춘천에 도착할 테고, 나는 버스를 탔으니까. 지난번 파로호 넘어가는 고개에서도 차들이 멈췄을 때 버스는 앞으로 전진했었다. 그런데... 버스 앞에 있던 차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서 속도가 느렸다. 차는 나아갈 수 있지만 길이 막혔다. 곳곳에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주차한 차들이 눈에 띄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 눈이 많이 오네. 버스는 빨리 가?"
"버스는 빨리 갈 수 있는데, 앞에 차가 막혔어."
"애들은 좀 어때?"
"첫째는 자고, 둘째는 지금 그냥 창밖을 보고 있어."
"알았어, 먼저 도착하면 연락해."
일 년에 한 번 가는 산천어 축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천어 축제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작년에는 폭설로 산에 갇혔고, 올해는 차가 고장 났다. 우리는 짐과 차를 춘천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년처럼 우리가 집에 가는 날 폭설이 내렸다. 작년에 겪은 일을 만회하고자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했다. 하지만 화도 나지 않았고, 맘이 상하지도 않았다. 남편과 나는 대화하는 내내 피식피식 웃었다.
여행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아무리 계획을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질 수도 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여정이 이루어졌어도 행복했겠지만 이런 준비가 무색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낚시를 못해 아쉽지만 오늘은 날이 추워 오래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낚시를 마치고 운전하면 피곤하고 빙판길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을 텐데 버스를 타고 마음 편하게 화천을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울거나 투정 부리지 않고, 작은 기념품과 붕어빵에 기뻐하며 춘천 가는 버스 안에서 지루한 시간을 잘 기다려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무엇보다 캐리어를 끌고 남춘천역 상륙 작전을 진두지휘한 남편에게도 고맙다고 말이다(작전장교였던 사람이랑 결혼한 나도 복도 많지).
남춘천역에서 남편을 만났다. 역 근처 이디야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춘천에도 폭설이 내렸지만 우리가 기차를 탈 즈음 눈은 그쳤다. 번번이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되는 화천. 두 번의 여행 모두 결국은 폭설을 만났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 현재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일을 즐겁게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감사하다.
P.S. 1) 고장 난 부품은 국내에 재고가 없어서 독일에서 와야 한다고 했다. 3주가 걸린단다. 2) 남편이 꼭 필요한 거라며 캐리어에 가지고 온 물건에는 아이들의 공예품이 들어있었다. 이번일을 추억할 기념품이다. 3) 우리는 그날 화천터미널-춘천역-남춘천역-용산역-수원역을 거쳐 지하철에서 마을버스로 환승하고 장장 9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비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데 행복했다. 문을 열자 집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보일러 안 끄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