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자라고 느낄 때
과자, 콜라, 김밥을 살 때 나는 그들보다 행복하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엄마에게 요구르트나 음료수를 사 달라고 한 적이 없다. 목욕탕에서 뭔가를 먹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목욕탕은 목욕하러 간 곳이지 음료수를 먹으러 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몇 년 뒤 엄마와 함께 간 옛날 목욕탕에서 엄마는 음료수를 하나 뽑아주셨다. 그때 나는 이제 부모님이 좀 여유가 있으신가 하고 느꼈었다.
나는 요즘 사소한 것에 여유와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부자라고 느끼는 일상 몇장면을 써본다.
나는 과자를 먹지 않는다. 마트에서 남편이 쥐포나 젤리를 살 때마다 '이렇게 소소하게 나가는 돈을 합치면 얼마가 되는지 아느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과자를 묻고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는 여유가 생겼다. 남편도 하나 사라고 권한다. 장바구니에 과자를 담을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몇 년 전 20kg을 감량한 뒤로 남편도 쥐포와 젤리는 먹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항상 삼각 김밥과 야채(기본) 김밥만 먹었다. 다른 재료가 들어간 김밥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싸니까. 난임 휴직을 한 후부터 원하는 김밥을 딱 한 줄만 사 먹었다. 지금은 분식집에 가서 참치 김밥, 돈가스 김밥을 넉넉히 주문한다. 주문한 김밥을 기다리는 시간이 기쁘다.
아이가 생기기 전 외식은 주로 주말에만 했고 배달음식도 거의 시켜 먹지 않았다. 가끔 치킨이 먹고 싶을 때는 치킨만, 피자를 주문할 때는 피자만 시켰다. 탄산음료는 집 근처 마트에서 따로 사 왔다. 요즘은 치킨을 주문할 때 치즈 스틱이나 치즈볼도 추가하고 피자를 시킬 때 토핑과 소스를 더 주문한다. 추가 메뉴를 고민 안 하고 살때마다 혼자 멋짐이 폭발한다.
어제 아이들과 방아머리 해수욕장에서 가서 갯벌 체험을 했다. 집에 오는 길, 오이도에 들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칼국수에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항상 칼국수만 시켰었는데... 해물파전을 함께 주문하게 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때 아이들이
"엄마, 사이다 먹고 싶어요."
"저는 환타 주세요."라고 해서 사이다와 환타도 추가했다. 어제, 가족과 나들이도 즐거웠지만 사이다와 환타를 거리낌 없이 주문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성공한 사람들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항상 최고를 경험하고,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해 감동을 받는 일이 별로 없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철저히 살았다. 지금 나의 행동은 불과 2년 전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처럼 살면 결국 나중에 정말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꼭 필요한 것 이외의 것에 철저히 무관심하게 살았다. 목욕탕의 요구르트처럼 말이다. 당연한 것들을 오래 외면하고 산 덕분에 현재 사소한 것에서 큰 기쁨을 얻는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즘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