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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캔두잇 Sep 08. 2024

밀크커피 반점이 똑! 떨어졌다.

내 얼굴 왼쪽 관자놀이 쪽에 밀크커피 반점이 있다.

이 점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이 점을 보고  ‘너 잃어버리면 그 점 보고 찾으려고 있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거울을 정면으로 볼 땐 잘 보이지 않아서 살면서 크게 신경 쓰며 살지는 않았지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출산 후 선물로 피부관리 10회를 끊어주어서 토닝을 받으러 갔다. 피부 관리사가 내 밀크커피반점에 관심을 보이며 조금이라도 연하게 해 주겠다며 갈 때마다 밀크커피 반점에 레이저를 엄청 많이 쐈다.

10회 정도 받고 나니 반점이 미세하게 연해 진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참에 점을 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피부관리사에게 밀크커피 반점을 빼기에 좋은 레이저시술이 있어 강남에 가보겠다 했더니 한 번에 똑떨어지는 건 없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한 번에 빼고 만다! ’


남편은 서울까지 가서 점을 빼고 오겠다는 나에게

‘근데 그걸 갑자기 왜 빼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도 그런 게 10년 동안 한 번도 점에 대해 물어본 적도없고, 이상하다고 여긴 적도 없던 사람이다.

결혼할 때도 안 빼던 점을 왜 이제 빼냐는 거다.

콤플렉스도 아닌 점을 왜 빼냐는 거다.

그러게 갑자기 왜 빼려고 마음을 먹은 걸까.

나도 다시 생각해 봤다.


‘늘 빼고 싶었는데, 한 번에 빠진다고 하니 빼고 싶어.’

‘사실은 이 점이 내게 콤플렉스였던 것 같아.’


언젠가 미용실에서 갈색으로 염색할 때 일이다. 미용사가 샴푸를 해주시면서 관자놀이에 내 점을 손으로 계속씻으셨다. 너무 오래 씻으시길래 ‘점이에요’라고 말했더니 ‘ 아! 죄송해요. 염색약이 물든 줄 알았어요.’라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여기 화장 지워졌다.’라며 반점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고 화상 입었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아기를 가지고 출산했을 때에는 딸아이 얼굴에 나처럼 밀크커피 반점이 있을까 걱정했었고, 출산한 직후에는 아이 얼굴에 점이 있나 없나 늘 확인했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늘 반점이 없는 오른쪽 얼굴을 카메라에 향해 찍었는지 사진첩에는 왼쪽 얼굴이 찍힌 사진이 없다.

사람들과 걸을 때도 상대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 걸 좋아해서 항상 자리를 바꾸었다.


무의식과 같았던 나의 습관들이 모두 왼쪽 관자놀이에 있는 밀크커피 반점 때문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이건 나에게 그동안 콤플렉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빼야 한다.


빼려고 마음먹으니 진짜 제대로 빼고 싶은 거다.

그래서 점 하나 빼러 홀로 서울에 가본다.

나 홀로 서울을 가긴 가나.. 남편이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발권해 주고 시간 계산과 길 안내까지 다 해주었다.

나 애기도 아닌데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엄청 오랜만에 혼자 나서는 길이라 조금 신나기도 했다. 아이들 없이 탄 기차에서 여유 있게 노래도 들으면서 용산역에 도착했다. 남편이 미리 보내준 지하철 노선을보면서 용산역 내에서 미어캣처럼 두리번두리번하고 있으니 카톡이 온다.

길 잘 찾아가나 걱정되었는지 도착시간에 맞춰 연락을 한 거다.

아이고 우스워라.  


예전에 아빠가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해 있을 적에 엄마랑 나랑 같이 아빠를 간병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홀로 집에 간다고 했었지. 그때 아빠가 목수술을 해서 말을 못 하던 때였는데 노트를 펼쳐 용산역에서 **역 가는 설명을 몇 장에 걸쳐 열심히 펜으로 쓰셨다. 엄마가 갈 수 있다고 해도 아빠는 어디서 어디로 나가라며 모르면 택시 타라며.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설명을 했었다.

그리고 기차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에 맞춰 엄마 잘 탔는지, 잘 내렸는지 확인 전화를 해보라고 하셨지.

남편이 서울에 홀로 병원 가는 내가 걱정되어하는 행동들이 우리 아빠랑 똑같네. 우리 아빠도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그랬구나.

그날 생각이 나서 웃기면서 마음이 따뜻했다.


오빠가 알려준 대로 나는 병원까지 잘 찾아갔다.

고개는 쉴 새 없이 왼쪽, 오른쪽 바쁘게 두리번거리고 어째서 나만 반대로 가는 듯이 서울 사람들을 요리조리바쁘게 피해 간다.


병원 시술대에 누우니 무섭고 떨렸다.

눈을 가리고 레이저를 쏘는데 소리에만 신경 썼더니

귀가 뚝딱이처럼 엄청 커진 느낌이었다.

치료를 잘 마치고 다시 용산역으로 간다. 어디 세지도 않고 바로 집으로 내려간다. 기차 시간 남았으니 더 놀다 오라는 남편에게 더 이른 기차를 새로 발권해 주라고 말했다. 보고 싶은 내 아가들 더 빨리 보려고.

용산역에서 하오 주려고 마이멜로디 인형이랑 꽈배기 빵을 사서 두 손 가득히 시골로 내려갔다.

역에서 애기 둘 태우고 기다리는 남편과 9시간 만에 상봉했다.  만나자마자 엉엉 우는 둘째 태오에게 퉁퉁 불어버린 내 찌찌를 얼른 물렸다.


그렇게 밀크커피반점을 뺐다.

시술받은 부위는 하루정도 후끈후끈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엄마 얼굴이 왜 그래요? 안 예뻐요.’라고 말하는 하오.

조금 지나면 예뻐질 거야라고 말해주었지.

10일 정도 지나자 딱지가 생기고 떨어지면서 그 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정말 점이 없어진 거다.! 색이 쏙 빠지고 하얀 속살이 있는 거다.


진짜 밀크커피 반점이 똑! 떨어졌다!

한 번에 이렇게 쏙 빠지다니 너무 신기했다.

그동안 모른척해왔던 내 밀크커피 반점.

콤플렉스였던 내 반점이 딱지가 되어 똑! 떨어지니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

잘 가라!  


‘엄마, 점이 없어지고 예뻐졌어요.‘

‘엄마는 원래 점 있어도 예뻤어!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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