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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캔두잇 Sep 06. 2024

엄마는 왜 그럴까

친정엄마, 순희

친정에 갔다.

이쁜 내 아가들 혼자 보기 아까워 시골에 적적하게

지내는 엄마 아빠에게 보여드리러.

그래야 아기 한번 보고 웃고 또 웃으니까.

남편 쉬는 주말에 가면 하룻밤 자고 올라와야 하니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혼자 아기 둘 데리고 목요일 오후에 친정으로 갔다.


아기 둘 태우고 혼자 운전은 처음이라,

첫째 줄 간식과 보여줄 영상까지 단단히 챙기고

둘째 낮잠 시간에 맞추어 출발했다.


예상대로 잘 가다가 둘째가 갑자기 깨더니 계속 운다.

15분이 지나도 울길래 휴게소에 들러 얼른 모유를 먹이고 다시 태웠다. 한 시간 더 가야 하는데...


정확히 35분 동안 울었다. 귀에서 윙윙거려...

그 와중에 하오는 콩순이를 보면서 태오가 시끄럽다고 하는데 돌아버리겠구먼.. 내가 왜 혼자 둘을 데리고 왔을까..


길고 긴 친정 가는 길. 두 시간 반이 지나서야 도착.

엄마랑 아빠가 목 빠지게 기다렸는가 마당에 나와계신다.  나는 안중에도 없고 하오랑 태오 보면서 함박웃음이시다. 힘들게 온 보람이 있구먼.

딸 몸보신 시킨다고 하모샤브샤브를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내 딸 하오가 몸보신하는가. 국물을 몇 번이나 더 달라며 맛있다고 캬~ 캬~ 거리며 마신다.

할아버지가 사주실 맛 나게 잘 먹었다.


아기는 봐도 봐도 안 질리다고 하는 것도 없이

내내 아기 보면서 집에서 뒹굴뒹굴했다.

이른 새벽인지 아침인지 5시 20분에 기상하신 아가들.

다들 친정 오면 쉰다는데 나 너무 피곤하잖아?

그래도 좋다. 나도 내 엄마 옆에 있어서.


토요일이 되어 기차 타고 내려온 오빠.

점심은 밖에서 먹는 삼겹살이다.

마당에서 엄마가 바로 뽑은 상추, 깻잎과 대파.

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주는 건 다 싱싱하다.

일요일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낮잠 시간이 되자 피곤하지 짜증을 잔뜩 내시는 딸.

얼른 씻겨서 차 태워가려고 만만의 준비를 했다.

둘째도 모유를 잔뜩 먹여서 갈 준비를 마쳤는데 울 엄마가 안 보인다.


아이. 타이밍 잘 맞춰 가야 가는 동안 안 울고 도착하는데.. 엄마 어디 간 거야~

그때 집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온다.

마트에 다녀온 엄마가 당면과 함께 잡채 만들 재료를 가득 품에 안고서.


엄마가 해주는 요리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잡채다. 엄마가 어제 만들어 주셔서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또 새로 해서 싸준다며 이제 만든다는데 성질이 팍! 나는 거다.

‘이제 가려고 하는데 언제 잡채를 하려고 그러느냐’.

어휴.

‘금방 해’ 그러면서 엄마 손이 바쁘다.


내가 평소에 엄마 집에 왔다가 갈 때마다 엄마는 바리바리 싸주신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 엄마 마음인 걸 알아서 ‘엄마 이거 더 줘. 저거 더 챙겨줘. ’하면서 바리바리 싸 오는데.


오늘은 새벽 5시에 깬 태오와 평소보다 말 안 듣는 하오 때문에 내내 예민해서 그게 그만 엄마한테 화가 가버렸다.

‘그럼 그냥 가. ’하면서도 손은 부랴부랴 잡채를 만들고 있다. 성질내는 딸 앞에서 마음이 급해 위생장갑이 안 껴진다며 장갑한테 성내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니 나는 또 빨리 가면 얼마나 빨리 가려고 그랬나. 여유 있게 챙겨 갈 것을 바로 후회한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엄마가 챙겨주고 싶은 거 다 챙겨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려하니, 울 엄마 이번엔 마늘을 갈고 있지 않은가.


아이고 줘도 줘도 모자란갑네.

허허 웃음이 나와.


‘가는 차 쫓아와서 마늘 넣어주려고 이제서 마늘 빻아??’ 하니 그제야 다 빻아진 마늘을 담아 주며 웃는 엄마.

행여 가는 길에 잡채가 쉴까 봐 아이스팩 대신 얼린 사골 넣어주는 엄마.

간다고 인사하려니 또 언제 방에 들어가 만 원짜리를 챙겨 와 아기 손에 쥐여주는 엄마.


엄마는 왜 그럴까.


엄마 집 와서 잘 먹고 잘 쉬고는 마지막에 성질을 내버렸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고 아픈지.

근데 생각해 보면 친정 왔다 올라가는 길에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좀 편히 지냈으면 하는데 늘 바쁘고

늘 애쓰는 모습이 아른거려 마음 한구석이 짠하고 슬픈 채로 간다.


내 자식한테 줘도 줘도 모자라고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고.

그런 자식 사랑을 나도 내 자식 낳아보니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엄마. 아빠 또 올게. 건강하게 잘 있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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