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한 지 8개월이 되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제일 친한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잘 지내? 네가 늘 행복한지 궁금했어.’
-휴직하고 집에서 아기 보고 너무 좋은데?
‘너는 자유시간 없어? 맨날 집에만 있고 사람들도
안 만나고 술 마시러도 안 나가고 그래서’
-아?! 그러네? 나 술 마시러 나간 적이 언제지. 아기 낳고 없는 듯?
친구가 짚어줘서 알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부인의 날’은 내게 없다.
종종 자유시간이라 하면 한두 시간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간다. 그러면 문구점을 가거나 서점에 간다.
가서 구경하고 문구도 사고 책도 사고 몇 만 원 쓰고 오면 기분이 딱 좋다.
딱히 아이들 놓고 나와 맥주 마시자. 하는 친구도 없지만, 내가 먼저 맥주 마시자 하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없다. 술 마시러 나간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한데 술 마시러 나가지 않아서 우울하거나 아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그저 평온하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은 나의 쳇바퀴 같은 육아 일상이 좋다.
자유부인의 날이 많지 않아도 난 지금 많이 행복해.
맥주 마실래? 하고 당장 불러낼 친구는 없지만
매일 저녁 맥주잔에 짠! 해주는 남편이 있고
안주로 나온 오징어를 같이 집어먹는 딸아이가 있고
그 앞에서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는 아들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 친구들이 두 시간 반 거리를 달려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래서 출산 후 처음으로 5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가졌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으나 아이들 데리고 가기엔 술집 느낌이 나서 못 갔던 중국음식점에 드디어 갔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맛이었고 남편이랑 또 와야지! 하고 두고 온 남편 생각을 했다.
빈티지 옷 가게에 가서 옷은 안 사고 깔깔거리며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아직 결혼 안 한 친구들이랑 있으니 내가 너무 아줌마같이 느껴지면 어쩌나, 공감대가 다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었는데 나도 아직 뭐 애기였다.
철없는 농담이나 하고 꺌꺌꺌 거리며 시답잖은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빼먹지 않고 다 찍는다는 인생 네 컷도 찍고 말이야.
몇 년 만에 아이들과 떨어져 친구들이랑 보낸 시간이 다음날 친구들이 모두 가고 나니 한여름 밤의 꿈같았다.
아이들을 놓고 나가 노는 것을 고대하지 않았으나,
아이들과 떨어져 내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했었구나 생각이 들 만큼 즐거웠다.
그 시간 동안 별 탈 없이 아이들과 잘 있어준 남편도 대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고 내가 다시 일상을 평범하게 보낼 힘을 주었다.
육아를 하면 시간이 금이다.
온전히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기가 낮잠 자는 2시간이 귀하고 밤잠을 재우고 육퇴 후에 주어지는 시간도 너무 귀하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쓰는 시간의 가치가 크다.
요즘은 내가 쏟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려고 한다.
불필요한 만남 후에 느끼는 허무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이번 친구들과의 시간이 참 좋은 만남이었다.
평소랑 달리 아이들을 놓고 나갔음에도 즐거웠고 알찼다.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나를 위해 쓰며 먼 길까지 와주는 나의 친구들. 그 마음이 너무 고맙다.
좋은 만남이라는 건 이런 거야.
좋은 만남으로 내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