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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9

우울증엔만둣국을끓여라


우울증에는 여러 가지 증상이 있는데, 내겐 식욕부진이 가장 심각하다.

잠도 못 자는데, 식욕도 없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있지도 않고,

굳이 맛있는 거 먹으러 찾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런가?

허리가 2인치나 줄었다. 

오호.. 좋은데?

살 빠지는 거 내가 원하는 건데,,,,

그런데, 허리살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도 빠지고 있다.

이런 젠장..

머리카락이라니..

그런데, 우울증 걸려있는 상황에서도 탈모가 걱정인 걸 보면, 나의 우울증은 견딜만한 것인가?

하마터면 위안받을 뻔했다.

지금 50일째 거의 잠을 못 자고, 걱정하고, 슬퍼하고, 무기력한데,,, 

내 우울증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머리가 빠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은데,,, 도대체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내가 뭘 좋아하지?

고민하다가, 그래 만둣국을 먹어야겠다.

그런데,, 작은 성공을 하려면,, 오우케이.. 내가 끓여야겠다.

한 번도 안 끓여봤는데?

괜찮아!

유튜브가 있잖아..

백종원 만둣국 검색하고,,, 오호.. 좋아..

한 번 훑는데,,, 우울증이 사라졌다.

영상 보는 7분 동안 우울증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 목표를 가져야 해..

목표가 들어오면 우울증이 나가고, 목표가 나가면 우울증이 들어오는 거야!


영상을 봤으니,, 냉장고를 뒤져볼까?


오호. 좋아..

딱 맞게 김치만두.. 고기만두로 만둣국 끓이면 좀 느끼하지.. 좋았어!

게다가 비비고? 대박 맛나겠다. 


영상에서 하라는 대로, 먼저 멸치를 볶고(그래야 비린내가 사라진대나 뭐래나?),

적절히 볶아지면,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고,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물이 끓는 동안, 야채 준비!

애호박, 양파, 대파!

당근도 있으면 좋은데, 당근이 없네..

그라믄 그냥 있는 걸로만!



물이 끓으면, 야채 투하!

야채가 익는다 싶으면 만두 투하!


국간장+진간장을 1:1 비율로.. 그러면 맛있다네!

슴슴하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계란을 풀면 끝!


아차! 사진을 안 찍었네...어쨌든!


자! 

맛이 어땠을까?


겁니 맛있었다.

와! 깜짝 놀랐네!

처음 끓인 거 맞아?

식당 차려도 되겠는데?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건가?


자신감이 급 상승했다. 

뭐야? 나 요리를 잘하는 남자였잖아! 요잘남!

아.. 근데 왜 내가 나를 그렇게 무기력하게 봤던 거지?

나 은근 괜찮은 사람인데….


영상을 보고, 만둣국을 끓이고, 먹는데 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좋았다. 우울증을 잊을 수 있었다.

우울증이 몸 안에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잊어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증을 가지고 있을 터다. 누구는 진하고, 누구는 연하고,,, 다만 그 정도가 다를진대,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도 있고, 안으로 컨트롤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러니, 우울증에 걸려있다면, 당장 만둣국 요리를 시작할 일이다.

한 시간 정도는 가뿐하게 이겨내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심스러운 것은, 만든 요리가 맛이 없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나는 요리도 못해! 잘할 줄 아는 게 없어!”

이러면 진짜 곤란하다.

그래서 쉬운 요리로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만둣국이다.

진짜 겁니 쉽다. 맛도 좋다.


우울증, 공황장애의 특효약은 ‘만둣국 끓여서 먹기!’이다.

만들어서 먹고 나면, 밤이 찾아오게 되면 또 ‘당분간은 슬플 예정!”이 시작된다.

그래도 그 한 시간은 내게, 또 연약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쉼을 주는 피난처 같은 곳이 될 테다. 


#공황장애 #우울증 #만둣국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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