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사놓고, 그 이유를 찾는 것처럼(시험공부하느라 힘들었으니 내게 영혼 값이 필요해! 혹은 어차피 운동 시작해야 하는데 미리 사놓은 거야 등등), 감정을 먼저 알아채고,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재수 좋은 일들이 내게 이미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건물 들어섰는데 엘리베이터가 딱 1층에서 대기하고 있거나, 급한데 지하철에 막 뛰어갔는데, 마침 문이 열리고 있다거나, 우연히 들아간 식당이 맛이 있다거나,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브런치 댓글로 응원해준다거나...
그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일터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그때엔 볼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아!
이제 내가 괜찮아져가고 있나 보다.
이제 좀 적응이 되어가나 보다.
이제 강해져가나 보다.
이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준비를 하나보다.
지하철에서의 뜬금없는 눈물은 그 신호쯤이라 여겨야겠다. 공황장애, 우울증 극복을 위한 마라톤이 이제야 시작된 기분이다.
그동안은 신발을 준비하고, 옷을 차려입고, 준비운동을 하고...
이제 두근대는 심장 안고, 출발선에서
'탕'하는 소리와 함께 첫걸음을 내디뎠다.
중간에 또 힘들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순간들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들을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runner’s high(미국 심리학자 멘델이 1997년에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 일정 시간 일정 강도로 운동하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는데, 이 엔도르핀이 마약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함) 구간이 나를 반길 것이다. 고통을 이겨내야, 환상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말 되겠다. 정녕 그냥 고통 없이 행복할 순 없는 거냐? 꼭 고통을….
중간중간 미리미리 물도 보충해줘야 한다.
목이 마르다 느끼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 것이라 한다.
목이 마르기 전에, 증세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도 주의해야겠다.
그렇게 예방하고, 버티다 보면, 결국 finish line을 가슴으로 쳐내며, 두 팔을 번쩍 치켜올리는 순간이 오리라!
그때엔 마음껏 울고 싶다.
나 이제 완전히 이겨냈다고
나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나 이제 온전해졌다고!
그때에 흘리는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의 눈물도, 서러움의 눈물도, 무기력함의 눈물도, 괴로움의 눈물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