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작은 형이 혜화동에 있는 동성고등학교를 나왔다.
천주교 고등학교라고 들어서,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천주교’라는 개념이 처음 내게 인식된 때인 듯하다.
그리고, 친한 대학 선배가 성당에서 결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시간 남짓 진행되는 내내, 어찌나
“일어서세요!”
“앉으세요!”
“일어서세요!”
“앉으세요!”
한 7~8번은 했던 거 같다.
군대 생각날 뻔!
내가 기억하는 천주교는 그게 다였던 듯!
그러다, 오늘 문득 ‘성당엘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용하고, 성스러운!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벽을 타고 면면히 흐르고, 그 태고의 음악이 나를 감싸 절대자에게 몸을 내어 맡겨지는 듯한 느낌?
그런데 그 절대자가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아파해도 된다! 내가 너를 지켜보고, 너를 귀하게 여기고, 너를 돌봐주겠다!”는 듯한 느낌을 마구 보내주는?
웅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옛스러워서 좋았다.
조용해서 좋았다.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교감은 했던 것 같아서 좋았다.
긴 의자에 앉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뭇 엄숙한 분위기에 가을처럼 물들어 있었다.
나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나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상념들을,
잠 못 들게 만드는 괴로움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두려운 미래들은 그 분위기 안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오직 잔잔함과, 자애로움, 왠지 모를 포근함만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곁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혼자 오롯이 잘 지낼 수 있어야 삶이 건강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가 내게 잘 대해줘야 하고, 누군가 나의 기대에 부합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나의 행복을 결정하게 하면 안 되겠구나!
이게 그 ‘수동적 의존성’이구나!
그래서 그런가?
요즘엔 혼자 삘삘거리고, 잘 돌아다닌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이건 오로지 나에게만 신경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유롭다는 말이다.
성당 안에서도 그랬다.
언제 일어나야 할지, 성당에 안 다니는데 기도해도 되는지, 이렇게 마음대로 성당에 들어와서 앉아 있어도 되는지… 그런 고민, 걱정 절대 안 해도 돼서 좋았는데, 왜 좋았나 생각해보니, 자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내 마음대로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자유!
무의식의 세계를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 자유!
그제야 내 안의 경직, 내 안의 부자연스러움, 내 안의 긴장들이 녹아 없어졌다.
그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징조일 수 있다.
결국 부자연스럽고, 의무감이나 책임감 등에 의해 생긴 병이라면, 치유의 시작도 자연스러움, 자유스러움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울 때에 비로소 꿈을 꾸고, 희망을 생각할 수 있다.
기억하는가?
공황장애는 ‘희망이 없을 때에 생기는 것’이라는 말!
공황장애를 벗어나려면 100개의 열쇠가 필요한데, 오늘 그중의 한 열쇠를 찾아낸 기분이다.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뒤돌아서 성모 마리아 상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랬더니,
“그래요! 언제든!”하며 성모 마리아상이 두 손 모아 내게 웃어주셨다.
그게 그렇게 위안됐다.
내게도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나 보다.
그러니, 우울증 & 공황장애라면,
성당엘 가보자!
또 아는가?
그곳에서 어떤 경험과 배움과 철학을 성장시켜 나올지?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왠지 조금만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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