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슬플 예정 32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작은 형이 혜화동에 있는 동성고등학교를 나왔다.

천주교 고등학교라고 들어서,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천주교’라는 개념이 처음 내게 인식된 때인 듯하다.

그리고, 친한 대학 선배가 성당에서 결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시간 남짓 진행되는 내내, 어찌나

“일어서세요!”

“앉으세요!”

“일어서세요!”

“앉으세요!”

한 7~8번은 했던 거 같다.

군대 생각날 뻔!

내가 기억하는 천주교는 그게 다였던 듯!


그러다, 오늘 문득 ‘성당엘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용하고, 성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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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벽을 타고 면면히 흐르고, 그 태고의 음악이 나를 감싸 절대자에게 몸을 내어 맡겨지는 듯한 느낌?

그런데 그 절대자가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아파해도 된다! 내가 너를 지켜보고, 너를 귀하게 여기고, 너를 돌봐주겠다!”는 듯한 느낌을 마구 보내주는?


웅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옛스러워서 좋았다.

조용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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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교감은 했던 것 같아서 좋았다.


긴 의자에 앉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뭇 엄숙한 분위기에 가을처럼 물들어 있었다.

나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나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상념들을,

잠 못 들게 만드는 괴로움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두려운 미래들은 그 분위기 안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오직 잔잔함과, 자애로움, 왠지 모를 포근함만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곁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혼자 오롯이 잘 지낼 수 있어야 삶이 건강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가 내게 잘 대해줘야 하고, 누군가 나의 기대에 부합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나의 행복을 결정하게 하면 안 되겠구나!

이게 그 ‘수동적 의존성’이구나!


그래서 그런가?

요즘엔 혼자 삘삘거리고, 잘 돌아다닌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이건 오로지 나에게만 신경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유롭다는 말이다.


성당 안에서도 그랬다.

언제 일어나야 할지, 성당에 안 다니는데 기도해도 되는지, 이렇게 마음대로 성당에 들어와서 앉아 있어도 되는지… 그런 고민, 걱정 절대 안 해도 돼서 좋았는데, 왜 좋았나 생각해보니, 자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내 마음대로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자유!

무의식의 세계를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 자유!

그제야 내 안의 경직, 내 안의 부자연스러움, 내 안의 긴장들이 녹아 없어졌다.

그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징조일 수 있다.

결국 부자연스럽고, 의무감이나 책임감 등에 의해 생긴 병이라면, 치유의 시작도 자연스러움, 자유스러움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울 때에 비로소 꿈을 꾸고, 희망을 생각할 수 있다.

기억하는가?

공황장애는 ‘희망이 없을 때에 생기는 것’이라는 말!

공황장애를 벗어나려면 100개의 열쇠가 필요한데, 오늘 그중의 한 열쇠를 찾아낸 기분이다.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뒤돌아서 성모 마리아 상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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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

그랬더니,

“그래요! 언제든!”하며 성모 마리아상이 두 손 모아 내게 웃어주셨다.

그게 그렇게 위안됐다.

내게도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나 보다.


그러니, 우울증 & 공황장애라면,

성당엘 가보자!

또 아는가?

그곳에서 어떤 경험과 배움과 철학을 성장시켜 나올지?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왠지 조금만 슬플 것 같다!


#우울증 #공황장애 #성당 #마리아상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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