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정신, 마음, 감정, 심리학, 우울증 같은 책을 읽다 보면, 거의 사람, 사랑, 관계에 의한 힘듦이 많이 등장한다.
아마 일이나 사업보다는 사람에 관련된 것이 훨씬 더 충격적인 듯하다.
오랜만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보다 좋아했다던 ‘안나 카레니나’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Happy families are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모든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비슷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그 모습이 제각각이다’
오빠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온 젊은 귀족부인 안나는 기차역에서 귀족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싸우고, 이혼 요구하고, 브론스키는 자살을 시도하고, 남편은 용서하고, 브론스키와 같이 외국으로 도망쳐서, 행복한가 싶더니,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브론스키의 사랑이 다른 여자에게 갔다고 생각한 안나는 결국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전에는,
“어떻게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질 수 있을까? 엄청 무서울 텐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아! 난 무서워!”
했었다.
왜냐?
나는 엄청 긍정적이고, 자기 확신에 차 있었으며, 하는 일이 잘 되고 있었고, 유쾌하고, 늘 미래를 꿈꾸는 high tension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막내 동생이 우울해하고 있을 때에,
‘잘 들어라! 군기가 빠지면 우울증이 들어오고, 군기가 들어오면 우울증이 나간다!’고 했다.
나중에, 막내에게 들은 얘기인데,
‘그때 형이 그렇게 얘기해서 엄청 속상했어!’
이 얘기 들을 때에도, 역시 ‘아! 막내는 군기가 빠져있어!’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때의 막내를 절실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그 깊은 외로움을 필사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려있으면, 가장 큰 문제는 아마 ‘삶의 목적 부재!’가 아닐까?
왜 사는지 모르겠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내 존재가 누구인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소설 속 안나 카레니나는 그 우울증을 누군가에게 극도로 의존함으로써, 버텨가고 있었는데, 그 누군가가 자기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생각되자,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이제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안나 카레니나의 쓸쓸함, 서글픔, 외로움, 두려움, 공포, 절망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유일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존중을 이루는 길이 아닌가? 단순히 사랑에 빠진 것을 넘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이다. 자기 존중은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의하면, 가장 상위 욕구로 가는 통로이다. 자아실현이라는 최상의 욕구는, 자기 존중 + 타인의 나에 대한 존중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게 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변심에 의해 깨어진 사랑은 단순히 관계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되었던 자기 존중과 자기 확신의 쇠락이고, 파국이며, 절멸이다. 자아가 분열되는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자기 존중과 타인의 나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면,
깊은 자기 부족과 자기 비하가 이어지면서
'난 쓸모없는 존재야, 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비루한 사람이야!'같은 의식을 갖게 된다.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자율 중추가 작동하지 않는 공황 장애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으면 왜 죽고 싶은지가 이렇게 설명이 된다.
안나 카레니나가 어째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날렸는지 이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시작한다면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보호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100개의 마음 중에 90개만 주고, 10개를 아낀다?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게 사랑일까?
사랑이란 100개의 마음 외에 더 못 줘서 안타깝고, 미안한 거 아닐까?
누군가에게 우주와도 같은 삶! 사람! 사랑!
알프레드 디 수자가 그랬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기야 말로 계산적이지 않은 사랑, 내 온 마음 다하는 사랑,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랑이 아닐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라고 말하던 시인의 마음을 알겠다.
그렇게 절절하게, 필사적으로 나를 내어주었기에, 사랑하다 버려지면 나의 의미, 삶의 의미, 목적이 사라지는 것이다.
차라리 죽고 싶어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는 건 행운!
그것에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버려진 이들에게 여전히 희망은 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한용운 님이 말씀하셨다. 떠났다고,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요. 떠나면 또다시 만나게 될 수 있다고!
어디 사랑 관련해서만 그렇겠는가?
사업 관련해서도 그렇고,
시험 관련해서도 그렇고,
취업 관련해서도 그렇고,
상사 관련해서도 그렇고,
가난 관련해서도 그렇고,,,,
그러니,
언젠가 그 세상과, 그 사업과, 그 시험과, 그 가난과, 그 사람과, 그 삶과 다시 마주하게 될 운명을 기다리자!
그때엔 더 기다려주고, 더 안아주고, 더 성숙하게 사랑해주자.
그러라고 우리에게 지금의 시간을, 지금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러지 않고는 이 절벽과도 같은, 도대체가 숨을 쉴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세상에게 버려지고, 사람에게 버려지고, 삶에게서 버려졌다 생각될 때,
그래서, 우울증, 수면장애,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다면, 그것만 생각하자!
여전히, 당분간 슬프겠지만 그렇게 하자!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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