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이여!
2021년 5월 11일에 내가 이런 글을 썼네?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의 차이가 뭘까?
같은 말 아닌가?
결국…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둘은 분명 다르다.
‘죽고 싶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전제로 하는 말이고,
‘살고 싶지 않다’는 뭔가를 시도하거나 하는 적극성의 개념이 아닌, 소극적이지만 단지 마음으로는 바라고 있는, 내가 뭔가를 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삶은 고통스러운?
나는 ‘죽고 싶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을까? ‘살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을까?
나는 언제 ‘죽고 싶다’라는 표현을 썼고, 언제 ‘살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죽고 싶다’라는 표현을 썼던 날들과 순간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2월 초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
그날 나는 왜 그렇게 감정에 휩싸여서, 극도로 뭔가 적극적인 행위를 하려 했던 것일까?
감정이라는 것도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는데, 아마 그전부터 쌓여오던 괴로움과 힘듦들이 아마 집을 짓듯이, 벽돌을 쌓듯이 내 안에 차곡차곡!
그러다 그날…
이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끝 모를 극도의 우울감과 두려움이 결국 나를 한강까지 가게 했었다. 터벅터벅… 한강까지 가는 그 길이 슬프다거나, 힘들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하더라는…
산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지는!
흔히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한참을 한강물 바로 앞에서 바라다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마치 제 할 일은 ‘유유히 흐르는 것’이라는 사명을 완수라도 하려는 듯이… 그게 그렇게 근사해 보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한강물의 사명이라니… 나의 할 일,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 안경은 잘 보이라고, 의자는 사람들이 앉으라고, 세탁기는 빨래를 하라고, 전화기는 통화를 하게 하려고… 모든 사물이 이렇듯 그 존재의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나는?
나에게도 존재의 목적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났더니,
‘철썩철썩’ 얕게 소리를 내며 부딪는 강물!
‘삶의 목적을 수행하려면,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부딪히고, 부서지고, 깨져야 하는구나!’
그제야 마음 가다듬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다.
한강물이 나를 살렸다. 돌아오는데, 그 철썩철썩 소리가
“잊지 마! 더 힘들고, 더 깨지고, 더 부서질 테지만, 그럴수록 너를 완수해가는 거야!”라는 것처럼 들렸다.
아! 그날이 선하다.
그리고, 또 죽고 싶다 생각했던 날은,,,
2월 말에도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 생생하다.
와! 그날이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날이었는데,,,
잘 버티고 있다 생각했는데,,,
괜찮아지고 있다 생각했는데,,,,
바로 전 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터라 그랬을까?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어서 그랬었던 듯하다.
진짜 생각하기도 싫다.
내 생애 가장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정말 미칠 것만 같았던, (실제로 잠깐 미친 것도 같다) 밤이었다.
진짜 내 생애 가장 힘든!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감정이 이는 그런 밤!
그 후로도 한 세 번 정도 ‘죽고 싶다’라는 적극적인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칼을 들고, 손목을 바라본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시도하고 싶어, 혹은 시도할까 봐 두려웠던 그런 순간들!
그러고 보니 2021년 참 힘든 한 해다!
ㅇㅅㅎ! 너 잘 버티고 있다. 대견하다!
‘살고 싶지 않다!’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수시로 겪는 감정 아닐까?
하루 24시간 중에 잠드는 시간 외에, 아마 거의 99% 그런 감정 아닐까?
잠 못 드는 우울증 환자들은 아마 잠 못 드는 그 시간에 더 그런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까?
오늘은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 그 경계에서 살짝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잽싸게 산으로 갔다.
산에 가서 위로를 많이 받은 경험이 있으니까!
지체 없이 출동!
와!
초록이 이렇게 선명할 수가..
5월의 산은 이렇게 선연하다.
심지어 산들거리는 바람이 초록색으로 채색되어 있는 느낌이다.
햇빛이 초록색 맛을 내는 느낌이다.
어스름해지는 저녁이 초록색 촉감을 자아내는 느낌이다.
조용히 나부끼는 나뭇잎이 ‘초록’의 소리를 내는 것 같은?
그만큼, 그렇게 산은 초록의 색과, 맛과, 소리와 촉감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딱!
청설모 발견!(사진 제일 중앙에 부지런히 가는 녀석이다)
나뭇가지를 타고 종종종 건너는데, 올망졸망 귀엽고, 대견하고!
한참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찾고 또 찾았다.
밤이 오면, 외로우려나?
그래서 저리 바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걸까?
그래도 넌 어딘가로 가고 있어서 좋겠다.
미래 걱정 안 해서 좋겠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아까부터 향기가 좋았다.
뭐지?
이 향기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술독에 배어 있는 향 같은 이 은은함은 뭐지?
참을 수 없어, 마스크를 벗었는데, 그 진한, 꽉 찬, 황홀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란..
뭐지? 도대체?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아카시아!
와!
눈이 잡아내는 산의 아름다움보다, 코가 느끼는 향기의 아름다움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와! 저렇게 모여 피어있다니,
산을 배경으로, 해넘이 석양을 정경으로 저리도 미려하게 향을 널리 널리 보내고 있다니…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조심히 당겨보았다.
차마 꺾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냥 가까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거기에 미천한 코를 대고, 자연의 위대함을, 태고적부터 내려오던 향기의 전설을 음미하고 싶을 뿐이었다. 오래됨의 신화가 켜켜이 쌓여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냥 단순한 향이 아니라, 세월의 향, 기다림의 향이었다.
이 안에 수 천년, 아니 어쩌면 수 만년의 햇빛, 바람, 비, 흙!
아카시아 향은 포기하지 않고, 흘러온 ‘묵묵함의 향’이었다.
나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기다리기로 했다.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묵묵하기로 했다.
기다리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기만 하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향을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터다.
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무심코 올라 온 산에서,
무심코 보게 된 나무에서,
무심코 맡게 된 아카시아 향에서 그 답을 찾게 되었다.
‘무엇이 되자!’가 아니라, ‘이렇게 살자!’가 내가 찾은 답이었다.
해결책을 찾고 나니,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사진 왼쪽 위에 유난히 보이는 밝음이 보이는가?
내 미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미래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
희망과 절망,
결심과 포기,
의지와 마음에서 방황하던 나였는데,,
참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 정도 상태면, 거의 완치 수준인데?
했지만,
내일이면 또다시, 아니다 내일까지 갈 것도 아니다.
바로 오늘 밤부터 다시 ‘슬플 예정’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 계단 전진했다.
이제 몇 계단 남아 있으려나?
98계단?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슬플 예정!
#우울증 #공황장애 #아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