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시작하자마자 눈이 무거운데, 그걸 인지하지 못하다가, 깜빡 졸음이 오려는 순간에 ‘아! 나 지금 눈이 잘 안 떠지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써 눈에 힘을 주고,
“정신 차려! 넌 운전 중이야!”
내가 나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면, 한 10초쯤은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또 내가 졸린 것을 인지 못하다가, 깜빡 다시 정신 차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불러 보다가, 그것도 힘이 드는지, 잠깐만에 다시 회색지대(완전히 깨어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완벽하게 잠든 상태도 아닌)로 입성!
신호등에 대기하면 안심이 되는데, 어느새 졸고 있다.
뒤 차가 ‘빵’하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며칠 전에는 10분 운전하는데, 15번 넘게 졸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만, 자칫 사고가 나면, 멀쩡하게 자신의 길을 가던 다른 차 주인이나,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말이다.
‘가장 큰 적은 자신이다!’라는 말을 늘
'나의 게으름과 싸워 이기기, 나의 나태함과 싸워 이기기, 나의 나른함과 싸워 이기기, 나의 빈둥거림과 싸워 이기기, 나의 나약함과 싸워이기기’로 규정해 왔던 터라, 웬만하면 나를 이기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데, 인간적으로 ‘졸음운전’은 나와의 싸움이 아니라, 남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가 아닌가?
이 생각이 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전하던 차를 길 가에 대고, 잠깐 눈을 붙였다.
마음이 편안하다.
난 왜 그렇게 빨리 가려고 했던 것일까? 이렇게 평안한데…
난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던 것일까? 잠깐 멈추면 이렇게 회복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욕심을 냈던 것일까? 이렇게도 걱정이 없어지는데…
나는 왜 그렇게 가지려 했던 것일까? 없어도, 이런 잠깐의 나를 위한 시간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나는 왜 그렇게 나만 생각했던 것일까? 남을 위하면 이렇게 기꺼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데…
며칠 전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에는, 지방의 순박한 지주인 레빈이 나온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 스테판, 스테판의 부인 돌리, 돌리의 여동생 키티를 사랑하지만, 거절당한다.
왜냐?
키티는 안나가 사랑에 빠진 브론스키의 구혼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론스키는 안나를 선택하고(삼각관계 징하다), 그 때문에 키티는 병이 든다.
그러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 레빈은 병이 치유된 키티와 결혼하고, 아이를 얻고 행복한 가정을 이끈다.('연금술사'라는 책으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류가 그랬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도, 지식도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없는 사랑뿐이다'라고)
그렇게 결국 사랑을 얻은 레빈은 생각한다.
‘사람은 타인이나 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와닿았던지..
‘사람은 타인이나 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그 말이, 졸음운전과 싸우다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길 가에 차를 대고, 평안함, 안온함, 후련함, 만족감, 인정, 수용을 경험하고 있는 중에 마치 ‘삶의 정답’처럼 다가왔다.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이 정말 옳은 걸까?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두렵고, 걱정하고, 불안하고, 고립되는 것도 다 그동안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 또 생각나네!
학교 다닐 때, 게스나 캘빈클라인 청바지(6~7만 원쯤 했던 것 같다)가 그렇게 입고 싶었는데, 조다쉬, 뱅뱅(동대문에 가면 8,000원에 팔았다) 같은 청바지를 입어야 했고,
나이키 운동화가 그렇게 부러웠는데, 내가 신은 신발은 우유 배달하시던 엄마가 과일가게 아줌마 큰 아들이 신던 운동화라며 내밀던 프로월드컵(프로스펙스도 아닌)!
오리털 파카가 그렇게 입고 싶었는데, 그냥 솜패딩!
Eastpak이나 jansport 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 나이키 운동화를 사려했을 때도, 없이 살아서 그런지 주저해야 했고, 정장 한 벌 사려해도 망설여야 했는데, 티셔츠는 낡아서 목이 늘어나 있고…
이제 안 그래도 되는데, 몸에 베인 습성이 씁쓸하다.
좋게 말하면 근검절약인데, 말이 좋아 그렇지 실상은 ‘궁상맞다’가 딱 맞는 말이다.
여하간, 그렇게 나를 위해 살아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늘 남을 위해 살았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