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죽는 게 아니다. 희망을 잃어서 죽는 것이다!
이게 끝이겠지?
하는 순간, 더 바닥이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어서 오라!’ 손짓할 것이다.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이 정도 아프면 되겠지?
이 정도 괴로우면 되겠지?
이 정도면 나도 참을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주인공 ‘잔시’처럼, 자신의 삶의 한계를 스스로가 결정짓고,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거기를 넘어버리면 포기하게 되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겠다.
“잎사귀야. 담쟁이에 붙어 있는 잎새 말이야.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면 나도 가는 거야!”
“이젠 기다리기도 지쳤어. 모든 집착에서 풀려나 저 가엾고 지쳐 버린 나뭇잎처럼 떨어지고 싶어!”
소설을 읽는 우리야 ‘희망을 가져!’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게다가 잔시가 앓고 있는 병은 폐렴이 아닌가?
사람은 ‘너무 아파서 죽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어버려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그게 이 소설의 면면에 흐르는 교훈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감동 포인트는,,,
늙은 화가 베어먼씨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벽에 잎사귀 하나를 그려 놓고, 급성 폐렴으로 사망한, 변변한 그림 하나 없는 늙은 화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이 이야기는,
단순히 소녀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떠난 늙은 화가의 이야기였지만,
사실,, 베어먼씨가 더 크게 와닿았다.
그는 늘 ‘위대한 걸작을 그리겠다!’라고 큰소리쳤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또 다른 포인트인지도 모른다.
그는 늘 희망이 있었다. 위대한 걸작을 그리겠다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이 그를 실패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순간,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희망이 있는 것일까?
전에 책에서 읽었었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잘 못한다고 한다.
그 질문을
‘무엇 때문에 죽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바꾸어 보면, 좀 더 답을 쉽게 찾는다고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4관왕인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나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들,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세상의 많은 곳들,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삶들,
내가 아직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지식과 지혜들,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음악들,
내가 아직 행하지 못했던 선한 행동들…..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차례차례 하나하나 진행해야겠다.
소파에 누워서, 배 긁으면서 TV 채널 돌리는 삶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책 읽으며 알아가는, 성장해가는 쾌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 만나 세상을 넓히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남을 돕는 선함으로 나를 고양시키는….
와!
좋은 생각하니, 희망이 싹 틔우는 기분이다.
초록색 싹이 흙을 뚫고 나와 ‘나 불렀어?’하며 나를 반기는 기분이다.
희망이 있으니, 이제 힘을 낼 차례인가?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에 시달리며, 시간이 지나면, 이 3가지 고통만 지나면 좋아질거야… 했는데, 대상포진까지 겹쳐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잊고 있었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돈오점수!
그러니,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대상포진에 고생하고 있다면,
오늘은 딱 하나!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읽자.
누가 아는가?
폭풍우 치는 그 밤에 베어먼 씨가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우리를 보며 씨익 한 번 웃어줄지!
‘희망을 가져!’라고 말하며, 싫지 않은 허풍 가득한 베어먼 씨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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