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분간 슬플 예정 49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결국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원인이었기에, 그 상황이 그대로인 한, 내가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내가 어떤 의지를 발휘할지라도, 병은 꼼짝 않고, 같은 자리에 있다가, 가끔 툭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송곳으로 찌르거나, 하염없이 눈물을 흐르게 한다거나, 밤새 잠 못 자게 한다거나, 죽을 것 같은 질식의 느낌을 갖게 한다거나…

 그중 하나도 힘든데, 4개를 동시에….

새벽 2시.

여전히 잠 못 들고 있었다.

오른쪽 갈비뼈는 쑤시고 아파왔다.

그게 서러워 눈물이 났다.

그러다, 발작!


보통 1~2개 정도인데, 

좀 전에는 4개를 동시에….

그래도 신기한 경험이다.

4개를 동시에 경험하기 위해서는, 깨어있어야 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고, 살점을 뜯어내고픈 아픔도 있어야 하고, 결국 기절 직전까지 가는 극한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내 인생에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던가?

중, 고등학교 때 알코올 중독 아빠를 피해 그 겨울 달동네 남의 집 담벼락에 숨어 있을 때도 이 보다는 안 아팠던 것 같은데, 이 보다는 덜 서러웠던 것 같은데, 이 보다는 덜 외로웠던 것 같은데…

아프다는 것은 서러움과, 외로움을 같이 동반하는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서럽고, 

무엇 때문에 외로운 걸까?

결국 나 혼자 오롯이 이겨내야 한다는, 결국 나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결국 나 혼자 어떻게든 두 발로 일어서야 한다는!

대학교 2학년 때, 제주도까지 자전거를 끌고 간 적이 있다. 친구 3명과 함께!

가는 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던지…

돈이 많이 없어서, 잠은 해수욕장에서 돗자리 펴놓고 해결하고, 해변에 놀러 온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 ‘먹을 거 뭐 남는 거 없나요?’ 구걸하며 식사를 해결하고, 낮엔 더우니, 새벽 일찍, 혹은 태양의 맹위가 사그라드는 오후 5시쯤 이동하고, 비가 오면, 국도의 어느 버스 정류장(벽돌로 집처럼 지어진 그런)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자전거 펑크가 나면, 수리점이 나올 때까지 6킬로씩 걸어가기도 하고,,, 몸이 약한 인태랑, 지웅이가 몇 번이나 여행을 멈추자고 했는데, 

‘하루만 더 가보자!’

‘절대 후회 없게 딱 하루만!’이라는 말로 겨우겨우 한 달 넘는 여행을 마쳤다.

지금 가라 하면 노노노…


제주도로 떠나는 대망의 첫날, 성수동의 그 삼표 시멘트 공장 옆을 지나던 그 밤의 정경!

너무 배가 고파, 초코파이 하나씩을 먹다가, 서로의 이빨 사이에 낀 초코파이를 보며 어이없게 웃었던 기억!

드디어 제주도 가는 배를 완도에서 탔던 그 성취감! 완도의 그 명사십리(모래 울음소리가 십리를 간다는) 해수욕장!

잘 데 없는 우리 넷을 재워주시던 표선의 그 선한 노부부!

생각해 보니,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중간중간 다정하고, 은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도 있었네)


여하간 그 고통스럽고 힘든 기억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선명한 기억, 없었으면 허전할 기억이다.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언젠가 이렇게 감사함으로 남게 되나 보다.


지금의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지금의 나는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니,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이 가장 선명하게, 없으면 허전할 기억으로 새겨지겠지!

그러니, 지금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지금을 하나라도 더 기억해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아련해진다.

이게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아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다!

다시 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구나!”


고생 많다.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당분간 담담할 예정!


#우울증 #대상포진 #공황장애 #제주도 #자전거

작가의 이전글 당분간 슬플 예정 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