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엔 콩국수
콩국수를 먹었다!
어릴 적에 맛있는 것은 달콤한 것이었다.
워낙에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625 때 공산당도 안 쳐들어왔다고 한다.
아마 공산당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설마 저곳에 사람들이 살겠어?’
그런 웰컴 투 동막골 같은 곳에 살던 나로서는 달콤한 것이라고는 설탕? 그런데 그런 설탕은 언감생심이고 기껏해야 뉴슈가?
그것도 옥수수 찔 때!
알사탕은 구경하기가 힘들었고!(그래서 지금도 이가 아주 튼튼하다. 어릴 때 단 것을 많이 못 먹고, 오이, 당근, 옥수수, 가지, 무 등만 먹어서)
작은 아빠가 목포에 사셨는데, 거기 갈 때 엄마가 산 초코파이...ㅋ...아직도 그 생각은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기억은 위대하다.
실라면이라고 알려나?
성인 엄지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라면 모양을 한 쫀듸기 스타일의 과자인데, 부산에서 전학 온 친구가 맛 보여줬는데,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리에서 별이 터지더라는!
평생 그것만 먹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는!
서주 아이스 밀크라는 아이스크림도 생각난다. 하얀색 바탕에 녹색 선들이 파도치는 포장지에 새하얀 아이스크림!
달콤함의 완전체!
부드러움의 끝!
맛과 촉감이 아직도 생생한...
그밖에 아폴로, 밭두렁, 꾀돌이...
다들 달콤한 것들이었다.
단 맛은 혀끝에서 느껴진다 한다.
혀의 처음에서 느껴지니 그 강렬함이 짠 맛이나, 신 맛, 쓴 맛보다 더한 것이지 싶다.
뭐든 처음은 강렬하고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콩국수를 먹었다.
몸이 안 좋으니 몸에 좋은 걸 먹자는 의도도 있었다.
단백질이 필요하기도 했고...
고기에서 나는 동물성 단백질이 아니라, 콩에서 나는 식물성 단백질!
뭔가 몸 구석구석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을 것 같은?
그 좋은 생각 때문이었을까?
콩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달콤한 맛도 아니고, 심지어 소금을 넣은 것도 아니었다.
밋밋했다.
밍숭 밍숭 했다.
무 맛!
대신 촉감은 확실했다.
끈적끈적?
꾸덕꾸덕?
희한한 것은 맛있었다는 것이다.
실라면도 아니고,
쫀듸기도 아니고,
아폴로도 아닌데,
맛있었다.
나이가 든 것일까?
어쩐지 나물이 좋아지더라니..
어쩐지 라면 하나 먹기도 부담스러워지더라니..
어쩐지 피자보다 묵사발이 맛있더라니..
어쩐지 콜라보다 물이 더 좋아지더라니..
무르게 끈적끈적한 콩국수를 먹으며, 맛있다 느끼며, 옛것을 소환해내고, 시간이 흐름을,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다니!
음식 선호도에도 나이가 묻어나는데, 모습은 어떻고, 또 건강은 어떨 것인가?
나이 듦이 문득 서러우나, 나이 들지 않고서는 누릴 수 없는 콩국수의 맛은 반대로 다행이다.
맛있는 김치와 먹으니 설탕도 필요 없고, 소금도 필요 없었다.
그게 더 맛있었다.
늘 해왔던 방식이 아닌데도 근사했다.
낯선 것에 대한 선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의!
콩국수를 먹고 나왔는데 햇살이 따숩다.
내 인생도 그랬으면!
맛난 거 먹고 행복해하는 소소함이 계속되기를!
오늘은 별로 안 슬플 예정!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콩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