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떨어지다!
2021년 7월 15일
하늘이 파랬다.
몇일 째 계속되는 무더위, 폭염에 무기력하고, 늘어질 것 같고, 덥고, 움직이기라도 할라치면 불편한 감정들이 고개를 들고, 뭔가를 먹기도 싫고, 누워있는 건 더 힘들고...
건강과 싸우는 시간들이 아닌, 더위&계절&날씨와 겨루는 힘겨운 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뭘 하기도 싫고,
어딘가로 가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고,
잠자기도 싫고,
먹기도 싫고,
그냥 강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극성스럽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극심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어서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싶었다.
아주아주 수동적이고,
매우 매우 귀찮은 일상!
그러다, 아파트 입구 바닥에서 낯선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감 떨어지다!
애기 감 하나가 제 무게를 못 이겨 툭 떨어져 있었다.
참다 참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미처 자라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몇 날의 비를 견디었을 터인데...
몇 날의 뜨거운 햇살을 이겨냈을 터인데...
몇 날의 어두운 밤을 참아냈을 터인데...
결국...
쩍 갈라진 채, 상처 입고 누워있었다.
전투를 미처 마치지 못한 채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배를 움켜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톨스토이 소설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안드레이처럼 명성을 쫓아 전쟁에 나갔다가, 크게 다쳐 전투 중에 하늘을 바라보던..
그토록 바라던 명성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낀 그 순간의 안드레이처럼, 오직 하늘, 구름, 바람만이 보이고, 느껴지는!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자의 헛헛함이란...
가을까지 잘 자랄 것이라는 명성, 그 명성을 위해 참아내고 치르던 무수한 전투 같은 날들, 그러다 결국 상처 입고,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원하고 바라던 것에 대한 덧없는 헛헛함 가득 안은 채 감은 아무도 관심받지 못하고, 그렇게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걸까? 자기가 매달려 있었던 자리를 보는 걸까?
본디 있었던 자리를 그리워라도 하는 걸까?
저 상처에 쓸쓸한 쓴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쓸쓸한 웃음은 ‘이제야 평화를 얻었다!’는 안도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를 애타게 바라다가, 발 동동 구르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다가...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는 순간에 찾아오는 평안함, 안도감!
최선을 다한 자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내려놓음!
그래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라고 이름을 붙였나 보다. 피에르와 안드레이 두 주인공을 내세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의 격랑 속에서 삶과 죽음을, 사랑과 배신을, 희망과 절망을, 경험하게 한 후에야, 그런 전쟁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길바닥에 무심하게 떨어져 치열했던 삶을 마감하는 감을 보며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고, 삶의 교훈을 깨우치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라야 비로소 ‘평화’가 올 것이라는...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피 흘리며, 누워 하늘을 바라 볼 자격이 있는가?
다시 일어서야겠다!
다시 걸어가야겠다!
다시금 삶과 죽음, 사랑과 배신, 희망과 절망이 뒤엉킨 격랑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당당히 부딪히고, 맞서고, 싸워야겠다.
숨이 막힐 것 같은(공황장애) 엄청난 더위의 막막함을 견디고,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무지막지하게(대상포진) 내리는 비의 처절함을 견디고,
절망에 몸부림치는 칠흑 같은 밤들(불면증)에 의연해져야겠다.
언젠가 내게 찾아올 ‘평화’를 위하여!
이름 없이 스러져가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당분간은 결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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