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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34

우울증엔 김부각!

나는 4형제 중, 셋째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넉넉하게 보낸 사람이 거의 없다.

내 주위에만 없는 건가?

많은데,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여하간, 어릴 때 힘든 얘기 하면,

“야! 나는 이랬어!”

“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집은 이랬어!”

“야야야! 우리 아빠는 말이야!”

하면서 지지 않으려는 듯이, 자신의 힘든 시절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다들 힘들게 살았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위안을 받기는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썩 좋지 만은 않다.

여하간, 내게 어린 시절은 결핍으로 기억된다.

나이키 운동화도 못 샀고(아직도 기억난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송수천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8만 원짜리 나이키 에어펌프를 신었다. 펌프질을 해 주면, 발목을 감싸주는 신계의 운동화!)

캘빈클라인 청바지 사달라고 말도 못 꺼냈고, 그래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바지 입은 친구가 너무너무 부러웠고, ‘저 친구는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라며 눈을 흘기곤 했다.

대신 나는 뱅뱅이나, 티피코시, 헌트 이런 종류의 바지를 입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엄마가 1,000원을 주셔서, 내가 

“엄마 등긁이가 1,000원인데…”하며 볼멘소리를 해 보았지만, 뻔히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기에,,,


여러 가지 결핍 중에, 반찬 결핍이 제일 심했던 것 같다.

반찬이라고는, 늘 

배추김치뿐!

그것도 아들 넷이 한 끼에 배추 한 통을 먹어 치우니,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짜게 담그기 시작하셨다. 

아! 아직도 그 배추김치 맛이 혀에 얼얼하다.

그러다 어쩌다 김을 한 장씩 주시는 날에는,,,, 와! 그 행복이란!

그래서 나의 좋은 식당의 기준은

‘반찬으로 김이 나오면 좋은 식당, 안 나오면 그저 그런 식당’이다.

참 어이없는 기준이지만, 어쩌랴.. 내 기준인 것을!


싸움을 잘하는 동성고등학교 다니던 작은 형이, 잽싸게 자기 몫의 김을 먹어 치우고서는, 내 김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청했던 것도 선하다. 얻어맞기 싫으면 군말 없이 8컷으로 나눈 김 중에 2컷 정도를 주고 막아야 했다.(작은 형은 꼭 6컷으로 나눠서 야무지게 빨리 먹어치웠다. 나쁜 놈)

막내는 너무 어려서, 작은 형이 내 것만 빼앗아 먹은 게 아직도 거시기하다. 


그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삶이 그래도 곤궁하지는 않게 되었을 때에, 

김부각이라는 것을 먹게 되었는데,,,


와! 

뭐여 이건?

김 그 자체도 내겐 어린 시절의 결핍에 복수하는 통쾌한 맛인데,, 김에 찹쌀가루를 묻혀 튀겨낸, 김부각!

세상에 이런 맛이!


고소하고, 바삭하고, 달큼하고, 짭조름하고,,,,,

많은 맛들이 뒤엉켜서, 혀에서 녹는데,,,,


그런 김부각을 한 동안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추어탕을 먹고 나오는데, 계산대 앞에 놓여있길래,

“아! 맞다. 김부각”

하며 냉큼 집어 들고 집에 와서 한 입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김부각도 그냥 그런 김부각이 있는데,,,

이건,,,

그냥 딱 내가 원하던 그 맛을 정확히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내게 물어보고, 확인받으며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완전 내 입맛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상표를 공개해 버리자!


한 봉지를 뜯었는데, 결국 나 혼자 다 해치우고 말았다.

마치 바나나킥 같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데, 어쩔 수 없이 다 먹게 되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김부각은 맛도 맛이지만, 소리가 좋다.

‘바삭’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그 소리!

차라리 맛보다 그 소리가 더 귀하고 정감이 간다.

시각으로, 청각으로, 미각으로, 촉각으로…

김부각 먹으면서, 미국 드라마 한 편 본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

그런 게 뭐야? 싶을 정도로, 내 모든 이성과 감성을 빼앗긴다.


그러니, 동지들이여!

일이 안 풀려 괴롭다면,

누군가에게 버려져 잠 못 들고 있다면, 

원하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 우울하다면,

미래가 보이지 않아 심장이 두근두근 대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런 것들이 너무 괴로워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김부각을 사자!


인터넷으로 5,000원 밖에 안 한다.

내 영혼의 값이 5,000원 보다는 더 귀하지 않은가?

작은 사치로 영혼을 치유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평소에 하지 않던, 혹은 전에는 했지만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시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 의무냐고?

빨리 나아야지!

빨리 벗어나야지!

빨리 털고 일어나야지!

그러니, ‘어떻게 하면~’이라는 고민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잔말 말고, 즉시

김부각을 사자!

봉지를 뜯어, 부서지지 않게 하나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입에 넣고 베어 물자.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은 괜찮아질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슬프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무사히 건너자!


#우울증 #공황장애 #김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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