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이야기-2

산책을 즐기는 고양이

by 이경화

쭉 동물과 함께 자라다시피 했었기에 어떤 동물에도 호불호가 따로 없었지만 카페를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고양이를 키우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몸통에 비해 지나치다 싶게 굵고 길어 보이던 꼬리를 가진 짙고 옅은 갈색 털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고등어 태비의 고양이. 아무리 봐도 약 6개월령 정도라는 카페 사장님의 말보다는 더 나이가 많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해리는 낯선 인간인 내게 처음부터 서슴없이 다가와 다리에 자신의 냄새를 묻히기도 하, 무릎에 올라오려고 하는 등 전혀 낯가림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혹시 내가 이 녀석을 유기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친근함을 표현하는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낯선 사람을 이토록 친근하게 대하는 길고양이라니. 해리의 행동은 애초에 집고양이가 유기되거나 가출한 것인지 추측하게 했다.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해리는 덩치와 달리 내게 전폭적으로 의지를 하고, 자신에게만 관심을 보일 것을 요구하는 예민하고 응석이 심한 성격이었다.

몇몇 수의사 선생님들은 외동 묘 타입이라 다른 고양이들을 더 입양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할 정도로 집착하는 고양이였다.

지금은 집 안에서 체격으로나 나이로나 리더 격이지만 셋째를 들이고부터는 유독 날카롭게 공격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인간인 내 기준으로는 너무 심한 괴롭힘이었기에 큰 소리로 한참을 야단쳤었다. 물론 인간의 언어가 고양이에게 통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 이후 해리는 다른 녀석들에게 혼을 내기는커녕 거의 움직이질 않고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애쓰는 듯 보였다.

처음 두드러진 변화를 느낀 것은 습식 사료를 나눠주던 날이었다.

가끔 영양과 수분 보충을 위해 습식 캔을 주는데 셋째가 달려드니 하악질 한 번 하지 않고 비켜서는 모습을 보였다.

어르고 달래며 제 몫을 충분히 먹도록 유도해 봤지만 계속 간식을 피해 도망까지 다녔다. 지금도 웬만큼 좋아하거나 배가 고프지 않으면 다른 녀석들이 제 사료를 노릴 때마다 비켜주고는 입맛을 다시며 떨어져서 쳐다보고 있거나 자리를 뜨고 다시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종인 고양이들에게는 까칠하지만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의존적인 고양이들도 있다고 들었었기에 해리도 그런 줄 알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열심히 달려들어 간식을 먹는다. 아무래도 큰 소리로 야단치던 내 모습이 충격으로 남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후회스러웠다. 그때부터 더 열심히 고양이 관련 유튜브나 책 등을 통해 그들의 습성이나 특징 등에 대해 잘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해리는 몇 년을 봤던 사람들의 방문에도 일단 숨어서 한참 관찰한 후에 나왔다. 나온 이후에도 거리를 유지하며 경계를 놓지 않는 모습이 안쓰럽다. 반면 처음부터 내게 친근하게 굴었던 걸 생각하면 왠지 뿌듯하면서도 너무 말을 잘 듣는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다시 유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라도 있는 걸까?

잘 먹던 간식도 눈치 보며 양보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상처를 심어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다시는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시기에 해리를 통해 생각지도 않은 고양이 집사가 되어 내 인생은 변할 수 있었는데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해리는 11년째 해를 맞은 지금도 옥상에서의 산책 시간을 즐긴다. 산책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으면 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기도 하고, 가끔은 문이 열리는 순간 로켓이 발사되듯 튀어 나가는 등 여전히 혈기를 뻗치며 살고 있다.

대체로 골골거리며 지내는 나와 달리 아직 튼튼한 모습으로 원하는 것을 당당하고 티 나게 요구하고 행동하는 해리의 모습은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상황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일깨우는 것 같다.

해리의 변함없는 그런 모습이 반갑고 감사하다.

옥상 산책은 해리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집사로서 해리만을 위해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 늘 안쓰럽고 아쉽다. 최근에는 그저 언제까지나, 최대한 오래 함께 산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짧은 산책 후 책장에 올라가 드러누운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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