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리와의 첫 만남
인생은 누구에게나 수많은 아픔이 있을 것이다. 유독 많고 혹독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는 반면대체로 무난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손톱에 박힌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니 아픔이나 시련에 대한 비교는 애초에 있을 수 없다.
나 또한 내 인생의 아픔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 그로 인해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리라 결심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바르게 살아봤자 배신과 아픔만 돌아올 뿐인 인생이라면 그냥 막살아보리라 마음먹은 적도 있다. 지금에서야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 중 나의 경우가 유별나게 더 아픈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때는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했고, 유연하고 세련된 태도로 이겨내기보다는 그저 외면하는 길을 택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쓴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아이 같은 투정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픔에 매몰되어 흘려보낸 시기였다. 그러던 중에 나는 지금 11년째 함께 하는 고양이 해리를 만나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되는 상처에 자신을 빠뜨린 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위험한 방법이 아닐까?
만약 당신이 아직 아픔을 극복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반려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빠듯한 생활이라도 한 마리 정도의 반려 동물을 케어할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반려 동물 혹은 반려 식물등을 키워보는 것을 시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의 경우는 손바닥 보다 작은 선인장조차 제대로 키워낸 적이 없고, 개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결국 좋은 인연이 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고양이는 사막의 모래처럼 버석거리고 답을 들을 수 없는 상처에 허덕이던 내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유난히 내 지인들 중에는 털 달린 동물은 일단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특히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양이 사료나 간식이 엄청 비싸던데 감당할 수 있겠냐?' 거나 "고양이는 주인도 몰라본다는데 개가 낫지 않겠냐" 거나 "호흡기 질환에 동물 털이나 먼지가 얼마나 안 좋은데 굳이 왜 키우려고 하느냐" 등등 그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는 나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고양이를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알아보다가 만난 것도 아니었던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모든 현실적인 이유들이 해리를 본 순간 무의미해졌던 것 같다.
고양이 카페 옥상에 버려져 있었다는 6개월 정도의 어린 고양이. 특별히 눈에 띄는 예쁜 모습을 가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크기의 고양이.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카페 사장님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사회성이 유독 부족해 보이던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처음 보는 나를 피하지도 겁내지도 않고 다가왔다. 마치 원래 가까운 사이었던 것처럼 곧바로 다가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무름에 올라오려고 시도하는 모습들이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반려 동물 따위 키우지 않겠다던 결심도 무색하게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면 어떡하지? 계속 낯선 곳에서 낯선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다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1주일을 보냈다. 이미 마음속에서 그 고양이는 내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올해 11살. 노령묘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