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이야기-3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

by 이경화

카페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는 옥상에서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없는 공간에서 새들의 공격까지 받았던 것 같다. 옥상에서 벌벌 떨며 땅에 납작 엎드려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일부러 더 옥상에 데리고 올라갔었다.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해리는 완벽하게 옥상에 적응했고. 그곳에서 영역을 확보하며 산책하는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하루 2~3번은 문 앞에 앉아 현관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옥상으로 나가기를 재촉하기도 한다. 심지어 녀석은 비바람이 불 때도 기어코 옥상에 올라가 비를 맞고 한 바퀴는 돌아본 후에야 겨우 집으로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고집쟁이 고양이로 자랐다. 용감함을 회복한 후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던 녀석이 복도에 갇혀 낮게 날고 있는 새를 사냥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예전에 유기된 후 공포에 떨었던 시간을 설복하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 자신의 사냥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거나 건강하게 회복된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설마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당시에는 너무 놀라서 온갖 망상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은 그저 사냥 본능대로 행 동했을 뿐이겠지. 인간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본인 위주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ㅎㅎㅎ;

새는 몸통을 물린 채 사선을 넘나들다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닫힌 창문 때문에 단숨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유리에 자신의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한참 후 기력이 빠진 작은 새는 창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웅크린 모습이었다. 비명을 삼키고 간신히 새를 잡아 살펴보았다. 깃털은 상당히 빠져 주위를 온통 털로 덮을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날개나 다리는 상한 곳이 없는 듯하여 겨우겨우 옥상 출입문을 열어 내보내 줄 수 있었다.

사냥감을 빼앗긴 해리의 억울함은 간식 캔으로 달래 줄 수밖에. 캔을 녀석의 코 밑으로 내려주면서 배곯을 일도 없는 집고양이는 사냥할 필요가 없다며 인간의 언어로 잔소리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살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사료를 주식 삼게 된 고양이가 굳이 다른 생명을 사냥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날 이후로는 새를 보더라도 달려들지 않고 채터링만으로 위협할 뿐 달려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고양이와 생활하며 가끔 이렇게 당연히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던진 말이 정말로 통하여 지켜지는 것 같은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쩌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신뢰는 언어나 종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경험이다. 혹은 해리에게 옥상이나 길 위에서의 생활은 이미 잊힌 옛일이 되었기 때문에 여유로운 옥상 산책이 가능해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과거의 기억은 이미 극복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는 해리와 함께 오늘도 옥상에 갔다 왔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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