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이야기-4

산책묘 해리의 우울

by 이경화

해리는 올해 말이면 묘생 11년 차 고양이다. 나를 집사로 만든 고양이이자 현재 5 냥이들의 대장격임에도 큰 덩치가 무색하게 어리광도 많고, 삐침도 잦은 소심한 질투쟁이다. 수의사 선생님들이 외동묘로 키우라거나 다른 고양이는 들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직, 간접적으로 꼭 한마디 하셨을 만큼 그 성격이 티가 났었나 보다. 처음에 어리바리 초보 집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덩치와 생김새만으로 멋있고 듬직하다고 착각했었다. 질투가 많은 만큼 처음에는 새로운 고양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의기소침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하악질을 시작으로 주먹질까지 하는 모습도 보였었다. 늘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 그랬었기에 한참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해리를 보기만 해도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의심만 하던 어느 날 방심한 녀석이 주먹질과 하악질을 연달아 시전 하며 행복이를 죽자고 뒤쫓는 모습을 보고서야 심각함을 알게 되어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말았다. 평소에는 너무 얌전한 모습이었던지라 오히려 기죽어 보이는 해리를 많이도 걱정하며 보란 듯이 대놓고 예뻐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니! 새삼 해리의 독점욕과 연기력에 감탄하게 된 사건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익숙해진 듯 격렬한 다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방심했던 것 같다.

머리가 복잡하니 잠은 들지 않고, 글도 전혀 진척이 없던 어느 날 멍하니 이웃한 블로거들의 글을 찾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을 발견했다. 고양이의 우울감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해리가 최근 보이는 모습과 흡사한 몇 가지가 발견되었다. 해리는 입양 초기 2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특이하게도 잠이 거의 없는 고양이로 지금도 밤을 새우는 내 옆에서 졸린 눈을 하고도 기어코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유독 거실의 큰 상자로 만들어 둔 숨숨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해리의 옥상 산책이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 계속될수록 문 앞에서 낮고 걸걸한 동굴 목소리로 울다가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휙 사라진 후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고, 거의 대부분 시간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발톱을 깎아도 목욕을 시켜도 누구보다 얌전하게 말을 잘 듣고, 잠을 참아가며 어떻게든 옆에 있으려고 애를 쓰는 해리가 벌써 3달이 넘어가도록 1회 10여 분 정도의 짧은 산책을 하루 2~3번 정도밖에 못 하는 것도 조용히 감수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우울했을까? 순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여태 아무리 많은 동생들이 생겨도 자신을 먼저 챙긴다는 것을 믿고 참았을 수도 있는데 나는 점점 침울해지는 녀석의 마음을 삐침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묘 가정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중에 제일 기본 철칙이 원래 있던 고양이를 항상 먼저 챙기는 것임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것을 많이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무던하다는 이유로 아기 고양이들이 너무 약하고 귀엽다는 이유로 태생적으로 외동묘 스타일이라는 해리를 잊고 있었다. 우는 애 젖 더 준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준 해리를 뒷전에 두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숨숨집에 숨어 있던 녀석을 꾀어 옥상에서 1시간의 산책을 하고 내려왔다. 예전 외동묘 시절에는 옥상에서 장난감 공을 던지면 꼭 강아지처럼 물고 내게 가져다주며 행복해하고, 꼬리를 일자로 꼿꼿하게 세운 채 앞장서서 걷다가 가끔 나를 돌아보면 눈을 마주치면서 쓰다듬기를 요구하고, 골골송으로 답하며 행복해하던 해리. 체온을 나누고, 마음에 드는 장소에 벌러덩 누운 채 나를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녀석의 털을 빗질해 주는 등 서로에게 충실한 시간으로 최소 30분 정도는 함께 산책을 즐겼는데 그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어도 참는 녀석에게 대단하다 말로만 칭찬했었다. 어리고 아프고 낯선 고양이 동생들이 생길 때마다 상처가 될까 나름 더 신경 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해리가 느끼는 것은 소외감과 짧아진 산책 시간이 아니었을까? 예민하긴 해도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녀석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이제야 녀석의 입장에서 약간 실감을 하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최근에는 시간은 약간 늘렸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전자책을 읽거나 딴생각을 하며 충실한 놀이를 함께 해 주지 못했기에 그 블로그를 읽을수록 찔리는 내용이 많았다.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나 보다. 해리는 예전처럼 느긋하게 자신을 따라다니며 눈 맞춤을 하고 쓰다듬는 나를 보면서 빨리 내려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제도 옥상 한쪽에 쌓인 낙엽을 보며 놀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게 하며 야옹거리며 안겨 내려가기를 거부하는 녀석을 억지고 데리고 내려왔었다. 오늘은 굳이 말리지 않고 실컷 놀게 했더니 마치 강아지라도 된 듯 낙엽을 코로 밀어내다가 마침 구석에서 찾아낸 긴 끈을 입에 꼭 문 채로 낙엽 위를 뒹굴면서 한참 시간을 보내는 해리를 보니 한 번도 어리광을 부려본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껴주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지만 몰라서 못 해주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예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해리는 심란하고 미안한 내 마음을 모른 채 빳빳하게 세운 꼬리로 자신의 기분 좋음을 한껏 표현하면서 느긋한 걸음으로 옥상 곳곳에 영역 표시를 하고 돌아다니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해리는 생후 6~7개월령에 나와 만났다.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가 함께 보낸 시간이 쌓이면서 1년에 2~3번 감자를 먹으면 자주 먹었다 할 만큼 안 먹는 나와 반대로 찐 감자를 보면 뜨거움도 불사할 만큼 좋아하는 고양이라는 것과, 고양이라면 10에 9는 좋아한다는 궁둥이팡팡에 앙칼지게 울며 경고하던 나머지 1에 속하는 희귀한 성격을 가진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채리와 행복이가 너무 좋아하는 것을 지켜보다 자신도 슬며시 끼어들기 시작했다가 이제는 다른 녀석의 접근을 차단하면서까지 실컷 궁둥이팡팡을 즐긴 후에야 근엄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줄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습식 사료는 연어 맛을 제일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입맛이 바뀌어 치킨을 더 좋아하고, 가끔 삶아주는 닭가슴살보다 구매한 고양이용 닭 가슴살을 더 잘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동안 해리는 아무리 새로운 고양이들이 들어와도 자신에 대한 내 관심을 믿고 그 외로운 시간들을 참으며 크게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던 것이리라. 1시간 정도의 온전한 둘만의 산책 후 기분이 풀린 녀석을 보니 그나마 늦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시 주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어울리며 살아갈 마음을 갖게 해 준 해리에게 많이 고맙고 늘 조금은 미안한 기분이다.

누구보다 먼저 내게 와준 고양이. 누구보다 내 행동에 영향을 받지만 참을성을 보이고, 신뢰를 표현하는 고양이. 그리고 우리 집 고양이 중 가장 건강한 고양이.

해리야, 크게 아픈 곳 없이 여태까지 잘 커주고, 옆에 있어줘서 많이 고마워. 앞으로도 쭉 건강하게 되도록 오래오래 함께 하자. 사랑한다~^^~

옥상 산책 중 낙엽 위에서 리본 찾기 놀이로 바쁜 해리(10/22)

작가의 이전글해리 이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