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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Mar 03. 2019

사랑한다면 장거리 연애를 망설이지 말 것

연애는 망했지만 후회는 없다.

BGM - When We Were Young / 아델(Adele)


장거리 연애는 '굳이'의 극치다.


살면서 남들은 한 번도 안 한다는 장거리 연애를 두 번이나 했고 계산해보니 장장 2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멀리 떨어져 다른 하늘 아래에 다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상대와 연애를 했다. 이런 분야는 굳이 뛰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20대 초반, 약 1년 반의 장거리 연애 끝에 얻은 가장 큰 삶의 교훈은 '장거리 연애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였다. 연애에서 '거리'라는 비극적인 장치가 더해진 장거리 연애는 절절했고, 절절했기에 감정 소모가 심했다. 살면서 쓸 눈물이란 눈물은 그 연애 기간에 다 쏟아부었는지 정작 끝나고는 눈물샘의 눈물이 말라버렸다. 절절한 연애는 한 번이면 족했다. 한 번 정도면 타인에게 으스대면서 이야기할 소재 정도는 되니까. 그 이상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고통스러운 연애는 한 번으로 충분하니 말이다.


인생이 뜻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으랴. "내 인생에 장거리 연애는 더 이상 없어. 연애는 부산에서 하는 거지 뭐. 서울 사람 안 만날 거야."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2017년의 나는 어리석게도 장거리 연애라는 함정에 또 빠져버렸다.



부산에서의 타향살이가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에 사랑이라는 콩깍지를 쓰고 서울에 사는 누군가와 또다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장거리 연애의 득과 실(정확히 말하자면 그중에서도 10할의 실)을 줄줄이 읊을 수 있었던 당시의 내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까닭은 결국 확률 문제였다.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를 좋아하면서도 함께 연애하기로 결심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기약 없이 부산에서 생활할 나의 미래를 뻔히 알면서도 장거리 연애를 할 의사가 있다는 상대의 눈을 보며 속으로 자문자답을 했다.


'거의 없지 않을까? 그래, 좋으면 된 거 아니야? 이번에는 다르겠지'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무지한 철부지가 되고 싶었던 나의 두 번째 장거리 연애는 정말로 그 전 장거리 연애와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지극히 평범한 두 삶이 만나 지극히 평범한 연애를 꿈꿨지만 내 인생에 불청객처럼 끼어든 타향살이가 여정에서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나 달랐다.




이 연애에서 나는 '을'이었다. 그전에 했던 장거리 연애에서는 내가 서울에, 상대가 타지에 있었기에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나더러 을이 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살던 고향에서 내쫓겨 새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내게 서울에 사는 상대는 자연스레 절대적인 '갑'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기준점인 서울이 아닌 타지에 사는 나는 절대적인 '을'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연애라는 몇 안 되는 수평적인 인간관계에 제멋대로 '갑과 을'의 패러다임을 덮어 씌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슈퍼 을'이었던 내가 연애를 하며 가장 주눅이 드는 순간은 시간과 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였다. 상대가 나를 보러 서울을 떠나 황금 같은 주말 중 최소 6시간은 열차 안에서 버리고 티켓 비용으로 십여만 원을 한 번 더 버리고, 그래도 여행이랍시고 필요한 소모적인 것에 시간과 돈을 수차례 쏟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미안함에 나 자신은 한 없이 작아졌다. 말하지 않아도, 에둘러 눈치를 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만남이 반복될수록 나는 매번 가해자였고 그 사람은 피해자였다. 머릿속의 생각은 쉬이 날 떠나지 않았다.


'네가 다 잘못하고 있는 거야. 다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일러주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주변의 시선들 또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내몰았다.


'나 같으면 절대로 못해. 걔는 그거 다 감수하겠대?'
'주변에 있는 사람 만나면 되잖아.'
'나 부산에 있는 애 한 명 아는데 걔 소개해줄까?'
'야 그러면 데이트 비용으로 돈 엄청 깨지겠다. 왕복 왔다 갔다 하는 데는 얼마나 걸려?'
'예전에 아는 형이 장거리 연애했는데 엄청 사랑꾼인데도 1년을 못 가더라니까?'
'한 달에 몇 번 만나? 그렇게 만나고도 연애라고 할 수 있나?'


힐난이 담긴 시선에 '그저 좋으니까 만난다.'는 단순한 한 구절을 입밖에 채 뱉어 보지도 못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정말 다 내 탓인 걸까.




문제는 비단 연애라는 관계 자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제대로 타지에서 적응도 못한, 아니 이제 적응을 막 시작하려고 했던 내가 서울에 사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부산에서 자립할 의지를 상실했다. 서울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낸 사람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통화를 할 때면 부산에서의 내 삶은 '번외'의 것으로 여겨지고 서울에서의 삶으로 기준점이 옮겨갔다. 출근길에 송정해수욕장을 보고 해운대고등학교를 지나 마침내 서면역에 내려 백양산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퇴근길에 괜히 해운대해수욕장의 모래를 지분지분 밟아보는 내 하루는 한 번 자고 일어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꿈이었다. 허상이 가득한 꿈에서 이내 깨어나면 서울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며 상실감이 절정에 달했던 순간은 주말 데이트가 끝나고 기차역에서 안녕을 고할 때였다. 그 배경이 부산역이 됐건, 서울역이 됐건 상대에게 안녕을 말하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나는 연극의 막이 내리고 불이 꺼진 무대 한가운데에 축 늘어진 채 앉아 관객이 떠난 극장 안을 휘휘 둘러보는 슬픈 피에로로 변해 있었다. 몸에 맞지도 않게 크고 우스꽝스러운 옷과 장식을 벗어던지고 두꺼운 분장을 하나하나 지우는 피에로의 진짜 삶은 과연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연극 안의 삶일까? 아니면, 가족도 친구도 그 어느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공간을 향해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진짜 삶일까? 연극이 끝나고 마주하는 차디찬 공기가 행복은 내 현실이 아님을 알려줬다.




서울에 사는 연인은 나와 서울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외지에서의 생활이 반년을 넘어설 즈음에 얻은 향수병과 장거리 연애의 소리 없는 문제점이 범벅되면서 연애 상대의 역할을 기이하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내 연인은 타지에서 사는 나와 내 근거지였던 서울을 이어주는 실낱같은 끈이었다. 이 가는 끈이 탁 소리를 내며 끊어지면 나는 황망해질 것이다. 이 끈이 끊어지면 나는 이제 매일매일 서울의 날씨도, 출근길과 퇴근길의 교통도, 시내 풍경도, 서울에서 지내는 사람들 이야기도,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아니, 내게는 그런 것을 알 필요도, 권리도 없게 되어버린다. 나를 밀어낸 내 고향이 나를 낄낄 비웃을 것이다.


'거봐, 내가 뭐랬어. 거기서 잘 지내보라니까. 언감생심 뭘 꿈꾼 거야?'


기괴한 생각이 나를 잡아먹으면서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 하는 전화 통화에도 더 많은 시간을 내게 할애해주지 않는다며 상대에게 화풀이를 했고, 어쩌다 상대가 지인과 시간을 보내면 그럴 수 없는 내 처지를 속으로 비교하며 괜스레 시비를 걸었으며, 향수병으로 인한 우울증을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탓'으로 돌렸다. 상대는 물론 나의 정신까지 갉아먹었다. 시작부터 비정상적이었던 연애가 결국 그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은 끝이 나버렸고 결론이 한참 전에 나버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 연애 기간을 통틀어서 가장 상처 받았던 순간은 상대가 미래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친구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와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며 속상해했는데 나는 아니었다. 은근슬쩍 나와 너의 미래에 대해 화두를 꺼내는 상대의 말과 표정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미래라는 보상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나를 만날 필요가 없었던 거네?'


연애 그 자체가 순수하기를 바라며 힘들 걸 알면서도 '사랑하니까.'라는 문장 하나만을 마음에 새긴 채 시작했던 나와는 달리 상대는 이미 결말을 그려놓고 조건부 희생을 했던 것이다. '미래를 그리지 않을 것 같으면 이 관계도 끝난다.'는 식으로 상대는 "앞으로는 자신이 없다."며 그동안의 희생에 대해 이자를 쳐서 대가를 요구했다. 허탈한 문장에 이제껏 내가 했던 것은 순수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이해타산적인 두 남녀의 간교한 확률 싸움과 계산의 결과였다는 것을 너무 아프게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냉정한 현실은 잔인하기만 했다.




"너는 매사에 너무 부정적이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려 이제는 흐릿하게 기억나는 그 연애의 마지막 날 상대가 늘어놓았던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문장이다. 나를 탓하는 그 문장이 사실이어서 반박도 못한 채 목구멍 가득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꾹 참고 삼켜냈었다. 맞다. 나는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삶이 주는 시련 앞에서 당황한 채 어린아이가 돼버린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우울증, 향수병, 공허함과 같은 슬픔의 허들을 차례차례 뛰어넘어야만 했다. 맞다. 부정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더 많은 것들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마지막 말을 들은 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문득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보다 더 어렸고 지금보다 삶을 조금 덜 알아 더 철딱서니가 없었던 2017년에 했던 '장거리 연애'에서 '장거리'라는 독립변수를 제거하면 '행복한 연애'라는 다른 종속변수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밝고, 건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무의미한 미련을 가져본다. 그러나 이내 피식 웃는다.


연애도, 삶도 그 어느 것도 확률과 계산으로 재단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 어설프고, 실수도 많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뭔가 엉성하게 하는 것이 연애이고 삶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따지고, 희생한 만큼 보상받겠다는 계산을 들이대다 처절하게 실패했던 저 연애 경험은 그럼에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장거리'라는 꼬리표가 붙었어도 그 자체로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이제 와서 변수니 확률이니 들먹이며 '상황을 바꿨으면'하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수많은 나의 동료와 연인과 친구들의 오랜 흔적의 집합체다.  누구든 그런 것으로 삶이 이루어져 있다.


올해 첫 책으로 읽은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중 한 글귀이다. 나는 그렇게 힘들어했던 장거리 연애가 남긴 추억, 기쁨, 슬픔, 보람, 아쉬움의 집합체다. 그 시절을 견딘 나는 그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면 그 시절을 곱씹으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수많은 아픔을 딛고 그 아픔에 대해서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


사실, 첫 번째 문장은 거짓말이다.


장거리 연애는 꽤 괜찮은 삶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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