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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un 09. 2019

주말이 싫었던 직장인

'드디어 금요일이네요.'라고 입으로는 말했지만, 눈은 웃지 못했다.

평범한 직장인인 내게 주말이란 아주 어렸을 적 외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불량식품을 사 먹는 순간과도 같다. 할아버지를 대동하고 가야 할 정도로 자주 돌아오지 않는 기쁨이며, 그만큼 희소하기에 상당한 시간을 인내하게 한다. 찰나와 같은 만족감이 지나면 곧 다시 입맛을 다시면서 다음번을 기약하게 만든다는 점 또한 따뜻한 그때의 기억과 매주 마주하여도 떠나보낼 때는 아쉽기만 한 주말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괜스레 일요일 밤 10시 40분에 읽지 않고 구석에 제쳐놓았던 책을 들어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고 글을 쓰겠다고 메모를 했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번 보아도 아쉽고 아련한 주말이라는 단어 앞에 '부산이라는 타지에서 보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신기하게도 그 색채가 묘하게 변해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주말은 평범한 여타 주말들과는 다소 다르다. 새로운 색채를 띠고 나타났기에 일단 부담스럽고 한층 더 특별 대우를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이 들며, 그런 어색함이 주말을 한없이 길게 느껴지게 한다. 부산에서는 금요일 저녁 6시 00분부터 일요일 밤 10시 00분까지 최장 52시간이 통째로 상상 속 모래시계에 구겨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다. 시계의 윗부분이 조금이라도 줄기를 빌게 하는 숙제와도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다섯 번째로 보냈던 주말에 다녀온 동백섬

나는야 장기 여행자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처음이 주는 설렘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처음'이 붙은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대학교 첫 수업 때 그랬고, 회사 첫 출근 날에 그랬으며, 새로 산 구두를 처음 신을 때,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렇다.


처음 맞이하는 부산에서의 주말에 대한 경의는 여행책 한 권으로 표현했다. 약 300페이지 분량에 성인의 손바닥 크기만 한 부산 여행에 관한 책은 마치 하나의 상징과도 같았다. '해외여행도 아닌데 블로그 후기 보면 되지 거창하게 책까지 사야 할 일이냐'는 주변의 비웃음도 가볍게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그 책을 샀던 배경에는 '부산의 진짜 얼굴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알차고 친절한 여행서'라는 책 소개가 한몫했다.


당시에 내게는 가이드북이 절실했다. 나침반 하나 없이 방향을 잃고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가이드북이 제일 절실했지만 그런 가이드북은 애초에 있지도 않거니와 있다고 해도 이미 풍랑을 맞은 작은 조각의 배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에 대해 반은 포기한 상태였다. 인생이 아니라면 적어도 매주 찾아오는 이틀 분량의 주말만큼은 친절한 가이드북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집착적으로 약 52시간의 시간을 통제하려고 들었다.


책의 가이드에 따라 매주 주말에 관광 명소로 여행을 나섰다. 아침 일찍 일어나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카디건 한 장을 챙겨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여행서를 넣은 숄더백을 메고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외출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동백섬 입구' 정류장에 내려 책의 안내에 따라 동백섬을 걸어 오르면 샛노란 깃발과 무전기를 들고 목적 있는 걸음을 하는 군중들과 자연스레 섞였다. 여러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수많은 무리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다시 잰걸음을 재촉하면 마치 장기 여행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이 동백섬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 오륙도, 광안대교의 풍경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만 나에게는 이 순간이 앞으로 있을 수많은 마지막 중 처음이었다. 무기한으로 살아야 하는 이곳의 주민이 아니라, 앞으로 부산의 무수한 관광지 곳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는 거짓된 환상을 품으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다.



구두의 앞코가 닳을 무렵


빳빳했던 여행 책 표지가 흐늘흐늘해지기 시작하고 몇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다는 것을 대략 짐작으로 알 정도로 책이 익숙해질 즈음 사는 동네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공부하기 좋은 동네의 바다 앞 카페를 찾았고, 해산물이 싱싱한 집 근처 마트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루한 장보기가 끝난 후 혼자 맥주 마시기 좋은 술집을 알아냈고,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말하며 나를 반기는 미용실이 생겼다. 어엿한 동네 주민으로서 갖춰야 할 나만의 동선이 확립된 것이다.


처음에 대한 설렘이 떠나고 그 빈자리 중 절반의 공간을 익숙함이 차지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불만이 메웠다. 더는 여행할 장소도, 호기심도 없어진 만큼 주말을 차지할 무언가가 없었다. 관심 있는 독서 모임 활동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진행됐고 네이버 검색 창에 '전시회', '페스티벌' 등을 검색하고 수많은 검색 결과에 기뻐하다 '부산'으로 필터링(Filtering)하는 순간 결과의 대부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허무함을 클릭 한 번으로 맛봤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의 숫자도 발길도 뜸해질 무렵 직장 동료나 지인들이 안부 인사로 물어보는 '주말에 뭐할 거냐'는 질문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학교로 치면 수업이 지루해져 자체휴강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기였고, 회사로 따지자면 출근하자마자 D-9시간으로 퇴근 시간을 역산하는 법을 배웠던 시기였으며, 새로 산 구두의 앞코와 뒤축이 동시에 닳기 시작했을 때, 연애의 설렘이 사라지고 단점을 집어내기 바쁜 그때였다.


그때 내게는 내 하루와 이틀을 채울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새로운 무언가'가 없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주인 잘못 만난 선물


여행책이 너덜너덜해지고 한눈에도 헌 책임을 나타내며 빛바래던 시기에 나는 매주 찾아오는 금요일에 불안함을 느끼고는 했다. '드디어 금요일이네요.'라고 입으로는 말했지만, 눈은 웃지 못했다. 퇴근길에 마주하는 수많은 낯선 이들의 얼굴에 비친 설렘과 기쁨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쨍한 아침 햇빛에 눈을 떠 거실로 나가면 몇 개월이 흘러도 어색한 거실과 바깥 풍경이 나를 더 붕 뜨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허공에 붕 뜬 느낌이었다. 매주 찾아오는 만 2일의 시간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품에 안긴 쓸데없는 선물 같았다.


외출해도, 요리하며 시간을 보내도, 책을 읽어도, 오랫동안 통화를 해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토요일과 일요일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SNS를 보면 지인들이 얼마나 알차게 주말을 보냈는지 손으로 쓱쓱 넘기기만 해도 잘만 보이니 주말이라는 시간이 나라는 주인을 잘못 만나 허무하게 낭비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절로 들었다. 인생의 방향을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한데 이제는 주말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주체성마저 잃었다는 상실감이 나를 휘감았다.




주말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주말과의 불편한 동침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해결됐다. 외지 생활을 시작하고 반년 정도 됐을 무렵에 폐렴에 걸려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마음 또한 피폐해졌다. 고열로 밤잠을 설치고 속이 메슥거려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그게 아픈 것인지도 모르고 재깍재깍 출근하여 일상을 반복했다. 미련하게 병을 키워서 '폐렴 사이즈가 너무 크다'는 의사의 진단에 기함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 대신 죽 끓여줄 사람 하나 없다는 처절하게도 현실적이고 구차한 깨달음에 기어가듯이 본죽에 가서 죽을 샀다. 절정에 달했던 서러움은 아프다는 내 말을 듣고 한달음에 KTX를 타고 내려온 엄마 덕분에 가라앉았다. 향수병으로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나를 엄마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회복되고 난 후에도 엄마는 두어 달 정도 더 내 곁에서 생활하며 삼시 세끼는 물론 생활의 자질구레한 것을 챙겨줬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뜨끈한 밥과 국도, 반듯하게 다려진 옷도, 깨끗한 방도, 그런 것들은 아무렇게나 있어도 좋았다. 엄마와 함께 지냈던 시기에 있었던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3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산 뒤에 엄마에게 곧 집에 돌아갈 것을 알리는 전화 통화를 하고 난 뒤였다. 전화를 끊고 손에 들린 와인을 고쳐 들고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불현듯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내 안의 따뜻한 무언가가 마음을 꽉 채웠다. 다음날 관광할 장소도 없었고, 주변에 갈 만한 전시회나 페스티벌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으며, 새로 생긴 취미 생활은커녕 만 이틀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계획 또한 전무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따뜻하게 꽉 찼다. 붕 뜬 상태로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느낌 없이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새로운 무언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무언가'가 없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관계 심리학을 다루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에서 저자는 '안전 기지(Safe Base)'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착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안전 기지는 한 개인의 안정감을 불러일으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내 타향살이에도 그런 안전 기지가 필요했고 내게 그것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꽤 늦게 깨달았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는 위치가 서울의 지하철역과 달라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몸짓에 당황하고 일기 예보를 시청할 때 사는 곳인 부산 날씨 대신 서울의 날씨에 귀 기울이는 자신을 뒤늦게 알아차리며, 세상이 나를 저 멀리 밀쳐내는 기분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곁에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외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의 나는 몰랐다. 도시의 낯선 얼굴이 나를 놀라게 하고 이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다고 믿었을 때 뒷걸음질 치다 주저앉은 나를 다독였던 것은 한 병의 와인을 같이 나눠 마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런 사람만 있으면 주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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