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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Feb 21. 2019

처절했던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빈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2019년 2월 6일 오후 3시,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 5일 중 마지막 날이다. 오랜만에 머리를 하러 온 미용실의 2층 창가에서 ‘사람 구경’을 한다. 친구와 팔짱을 끼고 왁자지껄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 하나. 초조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다 이내 온 연인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반기는 사람 하나. 제 몸에 맞는 옷이 있을까 싶게 작은 옷을 입은 아이의 작디작은 손을 잡고 느린 걸음에 맞춰 걷는 엄마 하나.


평소에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평일 오후의 여유여서 그럴까.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소중함과 간절함이 배로 다가와서 그런가. 사람들의 표정에는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이 서려 있다. 


문득 내 안의 내가 말을 걸어온다. 

“야, 너 1년 전 이맘때 기억나? 딱 지금 이 시간에 짐 싸고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날 리 있겠는가. 연휴에는 항상 서울로 올라와서 지내다가 연휴 마지막 날 오후 3시가 되면 짐을 싸고 서울역으로 갈 채비를 했다. 여행객들로 공항이 혼잡할 테니 이때는 무조건 KTX를 타야 한다. 주로 예약하는 기차 출발 시각은 6시 반.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최적의 시각이다.


설 연휴, 5월 황금연휴, 샌드위치 연휴, 추석 연휴 등 휴일이 3일 이상 이어질 때는 무조건 서울로 올라간다는 나만의 법칙이 있었다. 2일간의 주말은 바다도 보고, 시내 여행도 하고, 조용히 쉬기도 하며 어떻게든 보낼 수 있다 하더라도 3일 이상은 타지에서 보내기가 심적으로 벅찼다. 무엇보다 남들은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연휴에 나만 혼자 우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 연휴 일과는 전날 저녁 6시부터 시작한다. 절대로 연휴 중에 1%의 확률로도 출근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업무를 마무리한다. 6시 00분이 되는 순간 동료 직원들과 덕담 인사를 하고 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여행 시작 전에 설렘이 극에 달하는 여행객처럼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부산역에서도, KTX 안에서도,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도 즐거움이 이어진다. 가족이 있는 집 문을 열면 내가 지내는 장소와 대조적으로 따뜻한 사람 온기와 은은한 불빛이 가득하다. 부모님에게 인사한다.


“엄마 아빠 안녕! 오랜만이지!”


오랜만에 엄마가 만든 저녁과 함께 반주로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내 방’ 안의 ‘내 침대’에 눕는다. 침대가 원래 이런 건가 싶게 포근하고 따뜻하다. '저 동네'에서 홀로 지내는 '그 방'과 '그 침대'가 아니다. 역시 이래야 하는 거다. 난방해도 왠지 모르게 찬기가 도는 방 안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침대 위에 모로 누워서 나도 모르게 새우잠을 자는 게 아니란 말이다. 누워서 방안을 죽 훑어본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인형, 피아노 교본, 교환학생 시절 기숙사 방문에 붙여놨던 팻말, 대학교 졸업사진, 신입사원 교육 때 받았던 명찰… 다 제자리에 있다. 레고 두 조각이 탁 소리가 나게 맞물리듯 나도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눈을 감는다.




원 없이 늦잠을 자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침대가 여전히 푹신한 게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게 실감 난다. 속으로 세어본다. 그래, 아직 연휴가 만 4일은 남았다. 비척비척 방을 나가보니 엄마는 부엌에 있다. 부산에서 통화할 때면 “내가 너 오면 이거 해주려고 장 봐놨어”나 “너 연휴에 올라오면 내가 그거 해줄까?”라고 말하던 엄마의 다짐이 진짜였나 보다. 연휴 기간 특별 요리 계획표에 맞춘 듯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엄마표 특식을 먹고 종일을 빈둥대다가 저녁 즈음 외출 준비를 한다. 연휴 전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이것저것 할 게 많아서 친구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4일간의 긴 연휴만이 허락하는 교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제도 본 것처럼 변한 것이 없다. 물론 그들도 내게 말한다. “잘 지내? 똑같네?”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남의 돈 벌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런 하소연을 역으로도 듣기도 하면 밤이 금세 무르익는다. 불현듯 친구 하나가 말한다. “네가 서울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정(假定)이라는 것은 참으로도 헛된 희망이다. 안될 줄을 알면서도 단 몇 초 만의 상상에서라도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덧없으면서도 달콤한 가정을 하는 친구의 문장에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내가 서울에서 일하면 나는 못 만났던 사람들과 교류를 할 것이고, 못했던 취미 생활을 할 것이고, 좀 더 밝은 삶을 영위할 것이고 그리고…


짧은 정적 끝에 술잔을 들고 말한다.


“그러게, 얼마나 좋을까.”




다음날은 엄마와 동네 나들이를 나간다. 장도 보고, 쇼핑도 하고, 부산에서도 할 수 있지만 엄마에 의하면 ‘서울이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하러 갈 예정이다. 회사에서 입을 재킷, 고작 계란프라이나 할 때 쓸 프라이팬, 아침잠이 많은 나를 위한 알람 시계도 살 것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백화점에 도착한다.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친구가 예쁘다며 찍어 올린 야경 사진에 배경으로 등장한 백화점이다. 잠들기 전에 술에 취해서 하염없이 그 사진을 바라본 기억이 있다. 백화점 앞에 고등학생 여럿이 지나간다. 교복을 보니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인가 보다. 깔깔 웃으며 뛰어다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천천히 흐려진다. 이토록 정겨운 동네가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이제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내게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연휴의 마지막 날이 찾아온다. 올 때와 다르게 배로 불어버린 짐을 싼다. 새로 산 옷, 집에서 쓸 주방용품,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는데도 구태여 엄마가 손수 싸준 밑반찬들. 시계를 보니 떠날 시간이 됐다. “엄마, 2주 뒤에 또 올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인사하고 도망치듯이 나온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으로 가 달라는 내 말에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적 있는 택시 기사의 질문이 돌아온다. “큰집 다녀오신 건가 봐요?” 대강 대답을 하고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정겨운 동네의 풍경을 바라본다. 


기사가 라디오의 볼륨을 올린다. 라디오 DJ가 묻는다.  “여러분, 연휴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가요?” 


정겨운 풍경들이 쉴 새 없이 나를 버리고 나를 떠난다. 시리게 화창한 오후의 햇살. 몇 년이 흘러도 이 순간의 색감과 감정이 내 안에 아로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집에 돌아왔다. 생계를 위해 사는 그 집에 돌아왔다. 시간은 벌써 10시. 내일 출근 전에 할 일이 많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에 대비해야 한다. 


가방을 열었다. 새로 산 프라이팬이 깨지지 않게 뽁뽁이로 잘 포장돼 있다. 재킷도 내일 당장 입을 수 있게 잘 개어져 있다. 내용물로 꽉 찬 반찬통이 여러 개. 반찬을 거절하는 나 때문에 엄마가 몰래 더 넣었나 보다. 새지 않게 잘 포장된 반찬통을 하나하나 꺼냈다. 맨 밑에 있는 반찬통 뚜껑 위에 엄마가 쓴 쪽지가 붙어 있다.


‘이거는 덜어서 전자레인지로 살짝 데워 먹으면 돼’


가방에서 물건을 더 꺼내려다가 일순간 멈췄다. 순식간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내 안에서 뜨겁게 치받쳤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리깐 시선을 들어 눈으로만 집안을 주욱 둘러봤다.


집안이 조용했다. 어둡고, 찬기가 돌고, 살림살이가 몇 없어 공허하며, 연휴의 마지막처럼 차분했다. 힘없이 그대로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누군가가 타향살이에서 가장 힘든 점을 골라보라고 하면 단언컨대 ‘연휴의 마지막 날’을 꼽겠다. 연휴 마지막 날 풍경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아릿한 경험이다. 투덜거리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평범함을 부러운 시선으로 구경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흐르는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남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시간 대부분을 열차 안에서 보내는 경험은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아픔 그 자체다.


어둡고 텅 빈 집안으로 돌아와 가져온 짐을 풀 때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손을 뻗어도 저 멀리 자리하는 간절한 희망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아픔을 회피하려 서울에 자주 올라가지 않아도, 반대로 더 자주 서울에 올라가도, 반년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이 생소한 아픔은 여전히 내 가슴 한구석을 쿡쿡 찔러댔다.


그 어떤 위로로도, 다독임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아릿한 아픔. 내게 연휴의 마지막 날은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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