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이지만, 부산 사람처럼 살 것이다.
직장을 위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기 전에 지인들이 내게 던졌던 우려의 말 중에는 노래방 '18번'처럼 정해진 멘트가 몇 있었다. 개중 Top 1을 차지하는 건 단연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어떻게 지낼 것이냐?'라는 구체적인 대책을 종용하는 물음이었다. 이에 뒤질세라 뒤이어 Top 2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질문은 '부산 사람들이 너무 억세다던데 괜찮겠냐?'였다. 대부분의 경우, 후자의 질문을 던지자마자 '아 맞다. 너도 만만찮게 센 성격이지 참.'하는 자문자답이 이어져서 나는 그냥 입을 한일자(一)로 다문 채 질문자를 째려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선입견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사고 메커니즘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우리나라에서는 지역감정으로 다른 지역 사람들과 우리 지역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속했던 서울 사람들 집단에서는 부산 사람들을 '억세다'고 표현하는 게 그 지역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부산 사람들을 '억세다'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이 그들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바다를 끼고 산 사람들', '피난 수도에 터를 잡고 살아 생명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달리 지칭해봐도 그게 전부를 대표할 리 없다. 일반화의 오류가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격이 급해 다혈질이고 무례한 낯선 이들을 서울에서보다 부산에서 많이 경험하기는 했다. 평일 점심에 식당에서 동료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밥을 먹는데 큰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한 아주머니가 별안간 우리 테이블을 향해 "시끄럽다! 밥 먹는데 이게 무슨 소란이고!"하며 난데없는 고함을 쳤다. 한 번이라면 괜찮은데 문제는 이런 어리둥절한 일들이 꽤 자주 벌어진다. 대중교통에서 사람을 홱홱 손으로 쳐서 밀어내는 노인들의 무례함이나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청유의 문장을 '당연히 그쪽 부서에서 하는 거 아녜요?'라는 신경질적인 지시로 탈바꿈시키는 회사 몇몇 직원들의 업무 태도는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러나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무례한 낯선 이들은 서울에도 많다. 약 1년 반 동안 부산에서 살아보니 저들이 진짜 부산 사람들은 아니었다.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산 사투리는 길이가 짧아서 문장 하나하나에 진심이 듬뿍 담겨있다. '왔나', '드가이소', '니 괜찮나?'와 같은 몇 음절이 꽁꽁 언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줬던 적이 많다. 서울의 "식사는 하셨나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못 본 새 얼굴이 좋아졌네요."의 문장보다 "밥 뭇나? 별일 없제. 얼굴 마이 좋아졌네. 살 만한갑네."라는 문장의 울림이 더 컸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세상에서 제일 불친절한 시비조로 건네는 몇 마디에 나는 사람들과 연대되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처럼 남도 우리처럼 대하는 부산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말에 숨은 진심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입사한 지 1년 좀 안 됐을 때 겪었던 사건이 부산 사람에 대한 나의 어리석은 편견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규 거래처에 각종 자료를 전달했던 어느 평범한 겨울날 오후였다. 과거 진행 이력이 없던 업무라 전달한 자료가 많이 부실했다. 거래처의 갑(甲)이 이내 답답하다는 듯이 내게 문자를 보냈다.
'XX씨, 자료가 너무 부족한데요. 사진 자료도 부족하고 내용은 거의 없네요. 추가 자료가 와야 진행 가능하겠네요.'
냉정한 그녀의 문자를 받고 사실상 당신에게 준 자료가 전부여서 이번 업무 건은 자료 부족으로 진행되지 않아도 이해하겠다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체념한 내 답장을 읽기는 한 건지 통상적으로 이런 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지, 내가 전달한 자료가 일반적인 자료에 비해 뭐가 부족한지, 자료를 충족하는 기본 요소가 무엇인지를 구구절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쏟아내는 하얀 말풍선 사이사이에 간단한 사과문이 담긴 노란 말풍선을 연신 끼워 넣었지만, 설명은 끝을 몰랐다. 장문으로 이어지는 문자를 보며 '이미 다 끝났는데 뭐 어쩌라는 거지? 진행 안 하면 그만인데 되게 화나나 보네. 진상이네, 진상.'이라며 속으로 불만을 삼켰다. 내가 소위 말하는 '쌩신입'도 아닌데 얼굴도 보지 않은 사이에 대뜸 가르치려고 드니 기분이 묘하게 불쾌해졌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 뒤에 그녀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XX씨, 추가 자료 안 주시나요? 아무리 기다려도 메일이 안 와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진정 업계에서 악명 높은 또라이한테 걸린 건지 판단하려고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리를 굴리다 포기하고 빠른 속도로 엄지손가락부터 놀렸다.
'헙! 어제 자료가 부족해서 진행하기 어렵다고 이해했거든요!ㅠㅠ'
'헐! 어떻게든... 진행해드려야죠.'
'지금이라도 추가 자료 알아봐 드릴까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열심히 추가로 자료 찾고... 내용도 검색해보고 그렇게 일하고 있는데요.'
'아이고... 무슨 신입이 이리 포기가 금방이래?ㅋㅋ'
문자를 주고받는 동안 눈앞에 '아뿔싸'라는 단어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의 체계도 제대로 모르면서 경력 좀 찼다고 거만했던 신입사원이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그녀는 꼬박 만 하루의 수고를 들여 고생했던 것이다. 애먼 자료를 빌미로 트집 잡고 기본이 뭔지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했던 꼰대는 사실 길 잃은 어린양이 안타까워 비즈니스에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일일이 가르쳤던 목자 같은 선배님이었다.
뒤늦게 발등에 불이 붙어 초치기로 자료를 구하자마자 그녀에게 전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내 불찰로 당신을 번거롭게 했다.', '사실 이번에 맡은 새로운 종류의 프로젝트라 허둥지둥했다.'는 사과의 문장을 하나씩 끼워 넣었다. 자료와 사과의 마음을 번갈아 전달할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얼굴 본 적도 없는 여자 선배의 조력으로 업무는 그럴싸한 성과로 마무리되었다. 업무가 마무리된 이후에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녀는 '이번 건은 다른 건보다 자료가 많이 부족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애정을 가지고 노력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해프닝이 일어난 지 2년이 다 돼가는데도 아직도 그녀의 '아이고. 무슨 신입이 이렇게 포기가 빨라.'라는 애정 반과 한심함 반이 섞인 질책이 회사에 다니는 내게 경종처럼 울리고는 한다. 이렇게 일하는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조금이라도 대충 일하고 싶을 때 그녀의 핀잔이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라는 메아리가 되어 문득문득 마음속에서 뜨겁게 울린다. 그녀는 자신이 쏟은 만 하루라는 시간과 나에게 던졌던 문장이 훗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건넨 무심한 호의였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쌓이고 돌이켜보니 그런 친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거래처의 갑은 나와 연락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직속 상사에게 연락해 나의 업무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하급 직원 제대로 교육하라며 위를 찌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효율적인 방식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직언으로 면박 줬던 그녀의 수고스러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다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을 정도로 착한 부산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이뿐만이 아니다. 만삭에 한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받치고 겨우 기대앉아 다른 한 손을 크게 불어 오른 배에 얹은 채 인수인계를 했던 회사 선임자도 있었다. 3주도 안 되는 인수인계 기간에 본인의 회사 생활 3년을 집약해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던 그 사람은 서울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물상이다. 자신은 밤 10시까지 야근하면서 내가 의자 등받이를 휙 돌려 '선배님'하고 부르면 언제든 바퀴 의자를 질질 끌어 내 자리로 와서 일을 봐주던 선배들도 서울의 회사에는 없다. 적자생존이라는 잔인한 개념 아래에 놓인 우리는 선후배가 아닌 칼끝에 서로를 겨누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산 사람들이, 모든 서울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고 정정한다면, 적어도 내가 겪은 부산 사람들은 그렇다.
부산 사람들은 성격도 급하고 남에 대한 참견도 심하다. 그래서 툭툭 진심을 던지고 과할 정도의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런 수많은 부산 사람들이 베풀었던 수고스러움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날의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의 순수한 친절이 모여 한 개인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 아닐까.
마지막으로 내가 부산 사람처럼 살았던 것이 언제였나 가물가물하다. 예쁜 말을 포장한다고 예쁜 진심을 흐리지는 않았던가. 서울 사람의 무심함과 냉정함에 상처받던 나는 정작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오지랖 넘치는 호의를 베풀었던가. 벌써 내 앞길만 챙기는 인정머리 없는 서울 사람 다 된 건 아닌가.
그래서 다짐한다. 서울에 살지만, 부산 사람처럼 살 것이다. 팍팍한 이 세상에서 의리라는 끈끈한 접착제로 사람들과 돌돌 뭉쳐 사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는 한기가 돌 정도로 얼어붙은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