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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25. 2019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지방 근무다.

퇴사 후 1년, 지방 회사에 바치는 헌사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시인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자신의 23년 인생을 바람이 키웠다고 했다. 짧은 한 문장이 함의하는 수많은 의미를 떠나서 나도 생각해본다. 만 2년 반 동안 나의 회사 생활을 키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2.5년의 직장생활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지방 근무다.


2017년 봄에 부산에 있는 한 지방 회사에 입사하여 이듬해 여름에 퇴사하기까지 약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회고하면 한 포기의 꼿꼿한 잡초가 떠오른다. 척박한 토양 위에 뿌리를 굳게 박아 내린 채 비바람이 불어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비바람을 약 올리듯이 새파랗게 피어있는 잡초가 내 지방 근무를 상징한다.


잡초가 처음부터 그렇게 새파랗게 피었으랴. 단단한 토양, 타는 듯한 뙤약볕, 세찬 비바람처럼 잡초가 무럭무럭 자랄 수밖에 없는 생장 조건이 있는데 지방 근무에는 인간 잡초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한 최적의 환경 요건이 잘 조성돼 있다.



전 직원 필참 요망


야~ 우리 팀에서 이번에 누구 차례냐? 또 순번 돌아왔는데?
아... 선배님 또요? 지난번에 한 게 몇 주 전인데?
선배님~ 제가 저번 행사 갔으니 이번에는 'ㅇ' 성씨 가진 사람이 참석할 차례입니다~


연초에는 등반 대회, 봄에는 환경 미화 행사,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는 사직구장 야구 관람, 여름 성수기에는 현장 직무로 차출, 초복에는 협력업체와 수박 나눔 행사, 겨울에는 우리 이웃을 위한 김장 행사...


이벤트 대행업체에 입사했는지 의심할 정도로 이 회사의 1년 치 달력은 행사 일정으로 꽉 찬다. 연초에는 한 해 목표 달성에 대한 결의를 다져야 하니까, 봄에는 날씨가 좋아서, 프로야구 시즌에는 부산의 자존심인 사직구장을 잊으면 섭섭하니까, 여름에는 업계의 성수기니까, 겨울에는 추운 날씨에 우리 이웃과 함께해야 하니까 등. 갖은 이유란 이유는 다 들러붙은 행사의 1년 치가 내 앞에 죽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 달에 적게는 1회, 많게는 2~3회 정도의 행사에 참여하면 1년에 대략 20여 개의 행사에 참여하고 한 해를 마무리한다. 게임 속 슈퍼마리오라도 된 양 행사를 하나씩 하나씩 뛰어넘어야 하는데 남들보다 좀 더 잘 뛰거나 빨리 뛰면 마리오처럼 몸집이 커지거나 2탄으로 게임이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1탄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다음 해 연초 행사부터 차례차례로 또 1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 토박이가 아니어서 수많은 행사가 부산 사람의 정서에 들어맞는 한 형태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르신'이 많은 이 지역과 이 회사가 가진 투박한 '지방 감성'이 더해진 산물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손발이 꽁꽁 어는 추위에 왕복 4시간 동안 등산을 한다든지,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굳이 금요일 저녁에 사직구장에서 막내가 끊임없이 나르는 간식과 생맥주를 챙기고 야구를 관람한다든지, 땡볕에 무거운 수박을 이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수박 나눔을 하는 행사 내용만 봐도 그렇다.


'요새 세상에도 이런 행사를 하나' 싶은 행사명 앞에는 설상가상으로 '전 직원'이라는 족쇄 같은 단어가 따라다닌다. 한 가지 더 서글픈 점은 행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영업은 활성화돼야 하고 매출은 좋아야 하기 때문에 팀 안에서 각자 순번을 받아서 행사에 참여한다. 가장 공정한 순번 지정 방식으로는 초등학교 출석부를 연상시키는 '이름 가나다 순'이 채택된다. 가끔은 격무에 시달리는 동료를 위해 다른 동료가 순번을 바꿔 행사에 참여하는 눈물겨운 의리까지 빛나기도 한다. 행사 시간 조율과 같은 배려에 대한 기대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업무가 많더라도 순번이 오면 할당된 양만큼의 행사에 참여하거나 동료 직원과 순번을 바꿔야 한다. 그게 규칙이고 모름지기 그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조직 부적응자가 되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으로 순번을 기다리면 된다.




일은 많고, 사람은 없는 고질적인 병폐


지방 회사에는 우수 인재가 부족하다. 굳이 지방 회사가 아니어도 어느 회사에서나 부족한 인력이 고질적인 문제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데 난 사람에 대해 충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모든 회사가 안고 있는 잔병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지방 회사에는 우수 인재는커녕 인재 자체가 없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지역 15~39세 청년 경제활동인구는 104만 명으로 10년 전인 2008년 126만 명보다 21.1% 감소했다. 이 같은 인구 유출은 가속화되어 부산의 주요 경제활동인구인 25~49세 인구가 2017년 121만 명에서 2047년 61만 명으로 약 5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노동 인구가 계속 서울, 수도권 등으로 유출되는 것이다.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다. 나 또한 원하는 일자리를 서울에서 구하지 못해 차선책으로 부산으로 가지 않았는가. 1지망이 아닌 2지망으로 입사한 회사에 인력이 넘쳐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중간 관리자가 부족하다는 관점은 고용자의 관점이니까 차치하고, 피고용자 관점에서 피부로 와 닿는 사실은 '업무 분장이라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업무 분장은 어쩌다 클릭을 잘못해 사규 게시판에서 보게 되는 몇 장 짜리 문서의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미 내가 소속된 부서에서도 타 회사에서 2명이 담당할 분량의 넓은 범위의 업무를 맡고 있는데도, 어제의 옆 부서 일도 오늘의 내 일이 되어 있고, 옆 옆 부서의 일도, 그 누구의 일도 아닌 새로운 개념의 일도 매일 아침 내 일이 되어 있다.


'나 없으면 우리 회사 문 닫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회사의 모든 일을 내가 하는 것 같은 기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제일 길게 쉰 것이 영업일 기준 3일이었는데 그때 회사 걱정하던 내게 친구가 '너 없이도 회사는 다 돌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정색하고 '아냐 우리 회사는 진짜 나 없으면 문 닫을 수도 있어.'라고 응수했다.

이를테면 매일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데 잘 모르는 타 부서의 대리님이 할 말이 있다며 회의실에서 잠깐 봤으면 좋겠다고 사내 메신저를 보낸다. 나는 지금 숨이 넘어가게 헐떡이며 일을 하고 있지만, 상급자가 '시간이 되냐'라고 묻는데 어느 하급자가 '아니요. 바쁜데요.' 하겠는가. 굴뚝같은 마음을 달래면서 회의실로 가면 대리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 결재판에 반듯하게 끼워진 서류 이것저것을 나에게 보여주며 어떤 일인지를 설명해준다. 서류 몇 장만 보고도 곧 내게 암울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슬픈 예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이어 대리님이 말한다.


"미안해 XX씨, 솔직히 말해서 우리 팀에서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부탁할게."


솔직해서 감사해야 하는 건가 갸우뚱하면서 썩은 표정으로 결재판 하나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이제 상사가 뒤이어 사무실로 들어온다.


상사가 "XX아~ A 부서에서 이런 거 부탁하더라~ 이거 마 그냥 네가 해줘라~ 알았제?"라고 말하며 '이번 주에 내가 끝내야 할 일'로 가득한 책상에 새로운 결재판 하나를 더 얹는다. 지난주 이맘때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져서 이게 데자뷔인지 그저 반복된 현실인지 헷갈린다. 새삼 '나는 시방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하루살이로군!'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황에서는 학교 체육 시간에 하는 피구처럼 몸을 훽 하고 피해서 나를 향해 던져지는 일을 피해야 하는데 나처럼 직급도 낮고 심지어 나이도 어린 사원들은 그냥 가만히 서서 몸에 부딪히는 일을 맞고 있을 수밖에 없다. 피구가 끝나고 자리에 주저앉아서 동료 사원들과 끌어안고 엉엉 우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이외에도 자잘한 불만사항들이 회사에 다니면서 넘실넘실 넘쳐나는데, 보수적인 부산의 성향을 십분 반영해 회사 전반의 분위기가 보수적이다 못해 폐쇄적이어서 겪게 되는 난항, 서울에 있는 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겪게 되는 시간과 돈 문제 등 소소한 단점들이 둥둥 떠서 내 머릿속을 배회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지방 회사여서 생기는 문제들도 아니고 단점 하나하나를 적나라하게 집어내어 불만을 품기에는 '회사란 다 그런 것'이며, 그전에 나 자신도 그리 완벽한 직원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타협해서 근무하게 된다.


이쯤 되면 부산에서 직장 생활이 굉장히 부정적인 기억일 것으로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나 역시도 퇴사 직후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곳은 아무나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하고 혀를 내둘렀지만, 퇴사 후 약 1년이 지난 지금에는 신기하게도 지방 회사 근무 경험이 내 경력에 빛나는 훈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단점들이 다시 강점들로 승화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수 인재가 부족하면, 내가 우수 인재가 되지 뭐!


일단 못 하는 일이 없다. 혼자서 2인분은 기본이고 때로는 3~4인분의 역할도 했기 때문에 담당하는 직무는 물론 조금이라도 관련성이 있는 일은 다 소화할 수 있다.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역으로 내가 일에 잡아먹힐 수 있다.'라는 생존과 직결된 위협을 바탕으로 매일을 허투루 쓰지 않은 채 절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업무가 몸에 배어 있게 된다. 당시에 가장 불만이었던 점은 전문성 없이 얕고 넓게 일한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그 회사를 퇴사하고 같은 직무로 이직하여 새 회사에서 좁은 업무 스콥(Scope)으로 일해보니 그렇다고 딱히 더 깊게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넓게 일하면 자연스레 깊이 일할 수밖에 없다. 일이 많으면 전문성은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한 만큼 일개 사원에게 부여되는 권한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은 커지게 되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을 담당할 기회도 많다. 다른 회사에서는 대리급이나 담당할 법한 프로젝트를 1~2년 차 시절에 혼자 기획하고 실행하여 성공적인 결과물로 이끌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담당한 일이 회사의 성과에 직결되었기에 성취감도 크고, 이 같은 프로젝트를 한 번 하고 나면 그보다 경미한 중요도의 일들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투박한 지방 감성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기억이 여럿


시간이 지나면 옆자리의 직원은 동료가 아닌 동무로 변하게 된다. '지방 사람들은 정이 많다.'는 선입견 범벅의 한 문장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직원들이 잔정이 많고 의리가 있다. 아직도 예전 회사를 생각하면 오후 3시~4시 즈음 가장 졸릴 때 각자 시선은 모니터에 꼿꼿이 둔 채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순간이 떠오른다. 팀원 하나가 오늘 타 부서와 협업하면서 겪었던 어이없는 일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함께 분노하고 서로를 위로하더니 이내 티격태격 말장난을 주고받는다.


기억을 더듬으면 순간의 파편들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날 뒷자리에 앉은 선배가 타 부서에서 후배라는 이유로 모욕 아닌 모욕을 당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덜덜 떨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선배와 나란히 매점으로 가서 사과 주스를 마셨다. 달짝지근한 사과 주스를 꿀꺽꿀꺽 마시면서 선배가 늘어놓는 푸념과 하소연을 듣고 반대로 위로를 했다. 업무로 인해 내가 사면초가로 곤경에 빠졌던 적이 있다. 퇴근 후에 지친 나를 위로하러 선배들 몇몇이 서면에 있는 술집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아침에는 옆자리 선배가 회의실에 들어갔다가 얼굴이 잿빛이 되어 나왔다. 남은 우리는 이번에는 무슨 일을 받은 거냐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의 퇴사일이 결정되고 마지막 회식 날 불현듯 팀원 하나가 상품권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이라는 것 뻔히 아는데도 각출하여 모은 돈이라며, 새 회사에서 입을 예쁜 새 옷 한 벌 사라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건네면서 싱긋 웃었다. 코끝이 찡했다. 그들은 '한때 같이 일했던 사람'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지이자 친구였다.



입사 전에 인터넷에서 '지방 근무', '지방 회사'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고 편협된 내용의 게시물을 읽으며 과장된 상상을 더해 실체도 없는 두려움에 떨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지, 억세다고 오해받는 지방 사람들과 나의 사고방식이 다르지 않을지 등 여러 상상에 휩싸여 입사 전부터 겁먹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당탕탕 좌충우돌 신입사원 성장기'라는 제목이 제일 어울릴 것 같은, 미국 시트콤 '디 오피스(The Office)'에서나 나올 법한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실생활에서 이어졌던 나의 지방 근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발판이었다. 진한 농도로 고민하고 고생한 만큼 남는 것도, 남는 사람들도 많았다. 치열하게 생활했으니 가능한 결과다. 다시 신입사원 시절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그 회사에서 내 경력의 첫 단추를 꿸 것이다. 자의였던 타의였던 고생해서 얻은 것만큼 값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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