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펜과 화장실.

by 윤모닝




몸은 피곤한데

기분은 좋아서 밖에 있고 싶고

밖에 있으니

떠오르는 거 많고 글도 잘 써지고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라 좋은데

하필 왜 지금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건데!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에디슨도 1%의 영감과 99%의 땀을 얘기할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영감이 주는 게 큰데

그런 영감이 샘솟는 지금

화장실 때문에 집에 가야 한다고??



지금 나는 뒤에 꼽혀있는

펜뚜껑을 앞으로 끼우고 싶지 않다.

비가 오고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차를 대고

조금의 미련과 뭉클함과 아픔 없이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싱싱했던 나의 여름.

순수하게 사랑했던

그때의 사진과 음악을 꺼내 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그 여유가 그 어디에도 흔들리고 있지 않은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 좋고

집에 들어가기 무지무지 싫은데

화장실 가고 싶어서 할 수 없이 들어가야겠다.



앞으로 영감을 떠올리고 싶다면

내 안의 것을 밖으로 꺼내고 싶다면

휴대폰을 끄고 TV가 없는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지금처럼 종이와 펜을 들고 앉아있자.

끊임없이 하루를 갈취하는

시끄러운 것들 속에서

내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을 우겨넣어보자.

아 내 생각을 꺼내는 게 이렇게 재밌구나.

난 이런 걸 좋아했구나.



이제 진짜 화장실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