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걸 주고 싶다.
“아니, 내가 나중에 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OO이도 그때 도와줬잖아. 그럼 할 말 없지 않나?”
일상을 지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뾰족한 말을 듣거나
자연스럽게 선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최근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세상 누구보다 스스로를 따뜻하게 지지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나에게
새삼스럽게 낯선 감정 하나가 찾아왔다.
‘그동안 이런 순간들이 많았을 텐데
난 그 속에서 얼마나 나 자신을 낮추고 살았을까.‘
억울한 쓴소리를 듣고도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전에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타인의 부탁에 괜찮지 않은 내 마음보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듣게 될 말들과 시선에 더 신경 썼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고
이왕이면 좋게 보이고 싶어서,
얼마나 하지 않아도 될 배려를 해왔으며,
흐르는 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고된 하루의 무게를 짊어지고서
세상을 버티고 돌아온 수고한 내 어깨에도 난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거라고,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그런 순간들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때론 세상 누구보다도 더 차갑게 스스로를 대해왔나.
찌그러뜨리려 하면 찌그러지고
의자를 빼앗기면 빼앗긴대로 서있었고
모른 척하면 나조차도 귀 기울이지 않고 차갑게 홀대했던,
잘못 끼워진 단추 하나가 나를 불편하게 해도
그게 당연한 거라며 스스로를 토닥이던,
그런 빗맞추어진 위로들 마저도
건강한 거라며 믿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이제야 낯섦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하필
자연스러운 무례함이
평범한 옷을 입고서
볕 들지 않는 먼지 쌓인 진실보다
반질반질한 친숙함이 더 값진 거라고
말하고 있는 이 억울한 순간에.
비록 몸이 자라 성인이 되면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려는 성숙함이
누구에게나 중요시되는 거겠지라며 생각해 왔던 믿음이 깨어져버린 실망과
일그러진 안경을 쓴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다면
구석에 감춰진 누군가의 조용한 진실은
없던 일처럼 묻힐 수 있는 거구나라는 절망과 함께 찾아오긴 했지만
그와 함께 스스로에게 차가웠던 그동안의 내가
나에게 더 무례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 정말 미안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잊지 않고 찾아와서
문을 두들겨준 이 낯섦이
나는 반갑다.
그리고 이 반가움은 어쩌면,
단단한 얼음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땅에서
툭하면 깨질 거 같은 껍질을 방패 삼아
운 좋게 깨지지 않고 잘 피해오던 유정란이
안전한 초원과 따뜻한 온기를 만나
마침내 병아리가 되어
방패 삼던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기에
맞이할 수 있었던 것 인지도 모른다.
이제 난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환경에 있어야겠다.
조심스럽지만 이제야 난 나의 차가웠던 뿌리를 넘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