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에 주눅 든 아이, 모험을 시작하다.
어렸을 때 나는 꿈이 많았다.
어떤 날은 가수가 되고 싶다가도, 어떤 날은 배드민턴 선수가 되고 싶었고,
어떤 날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들은
‘그 일은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 많아서 안 돼’
‘그 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그건 ~해서 안 돼’
나를 키워 준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으로 키웠지만
그들마저도 윗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왔기에 건강하게 사랑을 준다는 것을
보지도 알지도 못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양육방식을
고스란히 나에게 흘려보냈고
양육하기 쉽도록 일방적으로 나의 세계를
집안으로 좁히고 세상으로 더 뻗어나갈 수 없도록
덮어놓고 키웠다.
아마도 자신 이상으로 더 커져가는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감당할 수,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미술시간에 사람 눈모양의 타원형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과제가 주어졌다.
타원형의 모양을 최대한 살려서 창의적으로
그림을 채워 넣는 일이었다.
나는 주말에 늘 가족들과 차를 타고
마트를 가던 것이 생각나서 타원형의 종이에
뒷좌석에 앉은 나의 시점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정면을 그려 넣었다.
담임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가 붓을 놓았을 때
선생님은 잘 그린 몇몇 친구들의 작품들을 발표시켰다.
그러더니 맨 마지막에 가장 잘 그린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불러 친구들 앞에서
작품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들 앞에 섰고
‘아까 내 앞에 있던 친구가 더 잘 그린 거 같은데.
이 정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을 수준이라 내보일 정도는 아닌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엎어놓은 나의 그림을
얼굴 높이에서 친구들 앞으로 뒤집었다.
“오오~~”
“우와~~”
고요함 속에 들리는, 나의 예상과 너무 다른 반응들.
나는 분명 집에서 늘 들어왔던 말들처럼
'에이~ 저 정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지',
'쟤보다 니 앞에 친구가 더 잘 그렸어'
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감탄한 모습이었다.
“내가 의도한 건 이런 거였단다.
타원형 모양을 창의적으로 잘 살려서 그렸지? 자 다 같이 박수~!”
나를 잘했다고 무척 치켜세워준 담임선생님.
적어도 나에겐 흔하지 않았던 칭찬 몇 마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룰루랄라 신나게 만들었다.
손에는 내가 그린 그림을 꼬옥 쥔 채 엄마에게 보여주겠다며 신나게 달려온 나.
집에 들어와서 엄마에게 긴 서론을 말하며 놀래킬 준비를 한다.
“엄마 있잖아 있잖아~
내가 뭐 보여줄 거 있는데 말이지~
오늘 나 미술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칭찬받았다~~”
“오 그랬어?”
(빨래를 널며 대답하는 엄마. 나는 뒤에 숨겨둔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준다.)
“짜잔~!”
“오~! 잘 그렸네~”
“그치 그치? 미술 엄청 잘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내가 제일 잘했다면서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이
칭찬해 줬어 엄마~ 그래서 말인데~”
“웅 그래서?”
“나 화가가 되고 싶어요 엄마!”
화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한숨을 쉬며 헛웃음을 잠시 내비치고는, 나에게 말했다.
“화가는 돈 못 벌어서 안돼.
너 그걸로 벌어먹고 살려면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돼.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넌 이미 초등학생 6학년이라 늦었어.
그런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는 거라고.”
“아니 그래도 화가가 되고 싶은데…”
“글쎄 그런 걸로는 돈 못 벌어먹고 산다니까?”
그렇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된다는 말보다
안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라와서
20대 후반까지의 나는 늘 주눅 들어있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하다.'
늘 생활기록부에 꼬리를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이것은 가족들이 나를 향해 달아 준 꼬리표였다.
그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한 아이의 가능성과 인생을 가둘 수 있는 무서운 말인지 알지 못한 채
가족들은 학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그렇게 소개했다.
‘정말 나는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한 사람일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빠, 엄마가 한 말이니
이유가 있겠지라며 나도 나 스스로의 인생을
믿지 못하고 초, 중, 고등학교 생활을 해왔다.
‘성공한 것은 우연, 실패하는 것은 당연’이라는
마인드가 늘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고등학생으로 성장했고
영어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당시 반기문 외교관을 보면서
뭔가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있는 그가 부러웠고 나도 그를 닮아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나라의 중요한 외교정책도 논의하고 나중에는
세계의 난민들을 돕는 UN 기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도 꾸었다.
당시 나의 성적은 뭐라고 말하기 애매한
중상위 수준이었지만, 국, 영, 수, 사회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이 되어야 갈 수 있는 외교학과에 들어가서
반드시 외교관이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했다.
여기까지만 듣고보면 아마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마음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만 한다는 나의 마음 속에는,
‘그저 있는 존재자체로서 인정받지 못한 나’,
‘그래서 남들 눈에 보이는 성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아야한다는 불안감’,
‘늘 못할 거라고 말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분노’가 깔려있었다.
중상위 수준에 머물렀던 나는 정말 죽어라 공부만해도
쉽게 1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24시간 중에 22시간을 공부에 매달렸다.
밥도 갈아서 마시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모두 받아적겠다는 마음으로 펜을 열심히 굴렸고,
공부 이외에 친구들과의 시간은 모두 끊었다.
오로지 공부, 책, 문제집.
이해력이 느리고 고지식하다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에게.
‘과연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여기서 1등 못하면 난 죽어야해.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게 없을 거야’ 라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쓰럽고 무서운 생각들을 한채,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공부에 쏟았다.
그렇게 받아든 6월 모의고사 성적표. ‘전교 1등’
비록 실제 전교 1등이 전학을 가서
2등이었던 내가 1등이 되었지만,
꿈에도 그리던 1등을 하고 말았다..!
성적표를 나눠주는 선생님도 1등을 할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가 1등을 해버리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샛별에 대해
한껏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모든 과목 등수에 1이라고
표시된 숫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와.. 이거 진짜 나 맞아? 내가 한거야?’
그렇게 신나게 성적표를 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일찍오기를 기다리다가
늦은 저녁에야 돌아온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아빠, 눈 감아봐.”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손 내밀어봐 아빠. 짜잔~!”
눈에 들어오는 딸의 1등 성적표.
그러고는 한참을 보더니 한마디를 내밷는다.
“잘했네. 근데 자만하지마라.”
정말 하루에 22시간 공부해가며 모든 걸 쏟아서
얻어온 결과를 보며 아빠에게 내가 바란 건
‘너무 고생했고 수고했다. 역시 우리 딸이 최고네.’
라는 진심어린 반응이었는데, 돌아온 말은 자만하지말라는 말.
아닌척 했지만 내 속에서는 분명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나로서 충분히 가치있는 존재인데,
나의 모든 것을 쏟아도 아빠는 자만하지말라는
차가운 말을 할만큼 내 존재에 대한 인정보다
나를 훈육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모두의 기대를 안고서 문과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나는 고등학생 2학년이 되었고,
어느 새로 생긴 수학학원에서 한 젊은 수학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칭찬해주고
새롭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그런 선생님이었다.
나는 수학선생님과 호흡이 잘맞아서 그런지
전 과목 1등은 못한 적 많았지만
수학 전교 1등은 거의 놓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수학선생님이 진지하게 나에게
진로에 대해서 조언을 했다.
“나는 니가 외교관이 되는 것도 좋은데,
니 수학실력이 너무 아까워.
왠만해서 이과에서도 수학실력 안되서
원하는 대학 못가는 사람도 많은데,
너는 문과에다가 수학까지 잘하니까
이과에 들어와도 충분할 거 같아.
사람들을 돕고 싶은 직업이라면 이과로 졸업해서
의대를 가도 되잖아. 의대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떠니?”
선생님과 오랜 대화 끝에 나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을 거듭하여 결국 의대를 목표로 이과로 전과를 하기로 결심한다.
똑똑똑.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담임선생님이 돌아본다.
“저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이 당시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하는 상황은 많이 있었지만,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왠만한 수학실력으로는 이과에서 살아남지 못할 뿐만아니라 사회가 아닌 과학을 다시 공부해야하는건 안가봐도 아는 순탄치않은 길이었다.
더구나 수능을 준비해야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에 이런 결정을 한다는 건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만 정도였다.
“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과로 전과하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말이야? 왜 이제와서?”
“의대를 가고 싶어서요.”
“문과에서 전교 1등하는 놈이 왜 잘 가다가
유턴을 하니? 안된다. 다시 생각해보거라”
일주일 넘게 매일 찾아오는 나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내는 담임선생님.
이 소식을 듣고 지나가면서
나의 결정을 만류하는 다른 선생님들.
설득이 되지 않는 딸을 어떻게든 설득해달라며
촌지를 끼운 책을 담임선생님께 드린 부모님.
100명이 있다면 99명이 반대할 정도로
학교에서 내편은 정말 아무도 없었다.
“너 지금 이과로 전과해도 내가 장담하는데
절대로 의대 못가.
니가 4번 재수를 한다해도 절대 못갈거다!”라며
나에게 저주를 퍼부은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엄포를 한뒤,
과감하게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를 하게된다.
나는 이 시기에 이런 결정을 세상을 향한 분노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안된다고만 말했던 부모님의 양육이 나의 시야를 가렸고
그래서 나에게 안된다고 말하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편견을 깨부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영웅적 시나리오를 혼자 가슴에 품고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축복을 누리지 못한채.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3학년을
문과가 아닌 이과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자리,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과목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지만, 칠판과 거리가
아주 먼 저 구석 빈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설움을 가슴에 삼킨채 나는 공부에 매진했다.
내가 했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자 얘들아 궁금한거 있니?”
“선생님 쟤 왜 우리반으로 왔어요?
쟤 우리 내신 깎아먹으려고 온거 맞죠?”
“얘들아 그게 무슨 말이야”
“맞잖아요 선생님 쟤 왜 우리반에 있냐고요!”
정말 어느 성장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일어나 내가 이과로 온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같은 반 친구들.
수업 진행이 안될만큼 아이들의 불만은 솟구쳤다.
뿐만 아니라 복도로 지나가면서 다른 반을 봐도
내가 왜 이과로 왔냐는 질문을 하는게 다 들렸다.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가있는데도…
나는 나의 선택에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달려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아이들 눈에는 내가 여간 눈꼴사나운 존재였나보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책상을 저멀리 치워버린다던지,
문제집을 청소도구함 뒤로 숨겨버린다던지,
내가 문제집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싸가지 없게 안빌려준다고 말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던지,
정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온갖 술수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럴때마다 고맙게 문과 친구들이 편을 들면서 나를 옹호하며 돌아다녀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화살을 막아주진 못했다.
‘내가 그 안되는 걸 가능하게 해본다는데
다들 왜 저렇게까지 난리지?
어디 내가 저들 찍소리도 못하게 내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야 말겠어’
세상을 향한 분노를 나에게 공부하는 채찍질로 돌려버린 나.
좀더 나은 곳에서 공부하자라는 마음에
고등학교 자퇴를 결심한다.
물론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하는 것 만큼이나
선생님과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테니
나를 믿고 맡겨라며 밀고나간 결과
나의 고집으로 이 결정을 승인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정해진 울타리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전을 하게 되었다.
비록 이 당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와
세상을 향한 분노로 선택한,
건강하지 못한 모험이었지만
내 인생의 첫번째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