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공포와 분노, 차사고로 나타나다.
어느덧 운전을 하고 다닌 지 7년이 되었다.
그동안 운전 사고도 내가 낸 것은 1건, 남이 내 차를 들이박아 사고를 낸 적은 5건 정도였기에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은연중에 나름 운전 베테랑이 아닐까라는 프라이드? 가 있었던 것도 있다.
이런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던 나는 운전대만 잡으면
어디든 웬만하면 빨리 도착해야 하는,
나의 앞길에 차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없는 내 안의 질주본능에 사로잡혔고
항상 오버 스피드 상태로 도로를 내달렸다.
정말 이러다가 언젠간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도 했을 만큼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위험 수준을 어느 정도 직감했었던 것 같다.
그럴 뿐만 아니라 운전대만 잡으면 알 수 없는 정의감이 솟구쳐서
깜빡이도 없이 바로 앞에서 끼어드는 차량을 그렇게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뒤에서 급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차들을 끝까지 추격해서 욕이라도 퍼부을 기세로
창문을 내려 눈을 세모나게 뜨면서 째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부산에서 황매산 군립공원에 핀 억새들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데, 차사고가 나고 말았다.
시골길이라 신호가 없는 도로였는데 네비에 집중하며 따라가던 도중 옆에서 끼어드는 차량을 보지 못하고 직진했던 것이다.
운전석 쪽으로 내 차보다 더 큰 차가 부딪히면서 우리 차 안의 에어백은 다 터지고 친구와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차는 사진처럼 안의 구조가 다 보일 정도로 옆면이 다 부서졌지만 다행히 나와 친구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끝났고 상대측 차량도 다친 곳 없이
좋게 사고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언젠간 이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고가 크게 안 나서,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시원한 마음도 들었다.
이건 뭔가 내 안에 나도 알지 못하는 면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이번 일을 정신분석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어렸을 때의 모습을 스스로 떠올린다면 그중 하나가
형제의 괴롭힘과 장난 속에서 부모님을 찾아다니는 울보이다.
분명 내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무섭고 힘들어도
형제가 나에게 하는 행동은 부모님에게는 정당화되었다.
“에이 좋아서 그러는 거야.”
“너 그래도 오빠가 너 얼마나 생각하는 줄 아니?”
그러면서 안정감을 가지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는 나를 한마디도 못하게 덮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너 2-3살 때였나? 동네 슈퍼아저씨가 장난으로 너를 트럭에 태워서 납치하는 척했는데,
그 트럭 뒤를 열심히 쫓아가면서 ‘내 동생 내놔!!’라고 욕하고 소리친 게 너희 오빠였어.”
어렸을 때의 나는 이런 일화 앞에서 할 말을 하지 못했고,
늘 형제의 놀림과 장난 속에서 당하기만 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다루겠지만,
가족은 가족 안에서도 ‘나’라는 경계를 지켜주지 못하고 쉽게 무너뜨렸다.
성인이 되어 그렇게 나를 아낀다는 형제가
나의 목숨을 앗아갈 무서운, 공포스러운 잘못을 한 뒤에도 가족들은 그를 엄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릎 꿇고 나에게 사죄하는 것이 아니라
문 뒤에서 숨어서 말하는 장난스럽게 ‘미안’이라고 말하면서 넘기려는 형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처받았을 나를 헤아리지 않은 채 계속
‘잊어버려라. 가슴속에 꽁해가지고 그러면 너만 힘들다.'
'넌 참 이상한 아이구나.’
‘가족들이 함께 살아야지 어딜 가려고 하냐’라며
나를 부당한 울타리 속으로 가두려고 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구성원인 내가 느꼈을 무서움과 공포를 생각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분노가 내 가슴속에 무의식적으로 켜켜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차로로 끼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화가 더 많이 났던 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속도를 더 많이 내는 게 그 때문이었어요.
이전부터 질주는 분노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가족으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던 어린아이.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없을 만큼
나의 경계가 없었던 어린아이.
힘 앞에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직접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
공포스러웠을 어린아이를
나는 충분히 느끼고 보살피고 기다려주면서
내가 스스로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어주었다.
내 안의 분노에 찬 어린아이를 달래고 토닥여주며 한 달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그렇게 차가 수리가 되고 정비소에서 내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전과 다르게 핸들을 잡아도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
여유롭게 20-30분 일찍 출발해서 천천히라도 안전하게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앞서 새치기를 하는 차에 대해서도 놀라긴 하지만,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다’, ‘저 차도 오죽하면 저러겠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하나의 생각의 틀을 바꾸는 데도
엄청나게 에너지가 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음 하나 읽어주고 시간이 지났는데
정말 생각이라는 것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는 경험을 하다니..
나 스스로도 정말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