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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월 Jul 04. 2019

나의 서울, 너라는 중력

<대도시의 사랑법> 서평


 

 연애는 여행 같다.

나를 짓누르던 일상의 중력이 희미해지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며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러나 끝나자마자 그 낯설었던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돌아온 중력이 더 없이 강하게 짓누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날 때까지는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는 것까지도 여행과 연애는 닮았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여행의 문턱에서 좌절하며 시작한다. 애인 규호와 첫 여행을 떠나려던 ‘나’는 여권을 잘못 챙겨 온 바람에 규호를 혼자 보낸다. 공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며 나는 우리의 시작을 회상한다. 클럽에서 술을 연거푸 마셔 중력을 잃은 나는 규호를 마주치고 충동적으로 그에게 키스했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지만 규호는 다시 나를 찾아오고, 처음 만난 클럽에서 다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문득 ‘이상하게 그가 나의 서울인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중력이 바뀐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왔고 주거하고 일하는 공간인 대도시, 서울에서 당신으로. 줄곧 ‘가장 높은 곳’인 서울에 오기를 소망했던 규호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한다. 무중력 상태, 혹은 새로운 중력을 즐기며. 하지만 나에게는 서울 외에 또 하나의 중력이 있다. 전 애인에게서 이별 선물처럼 받았던 ‘카일리’, 콘돔 없이는 사랑을 나눌 수도, 다른 곳에 정착할 수도 없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지만 연애는 점점 중력의 무게에 눌리기 시작한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특별할 것 없이 서울에서 살아온 ‘나’의 서울이 되는 것과 제주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에 올라오고 싶어 하며, 대신 서울 가까운 인천애서 살던 규호의 서울이 되는 것은 다르다. 나에게 서울은 국적과도 같은 정체성이자 떠나지 못하는 현재의 공간이라면, 규호에게 서울은 언젠가 오고 싶은 곳,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아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너마저 나의 중력에 가둘 수 없다. ‘나’는 떠나는 규호를 웃는 얼굴로 배웅한다. 기다리겠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나’와 규호의 연애에는 ‘카일리’라는 너무나 분명한 장벽이 있다. 카일리가 없었다면 나는 주재원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운이 좋다면 발령을 받아 규호와 함께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어땠을까. 중국어도 쉬이 익히지 못했던 내가 규호와 함께 정착한 중국에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아픈 어머니는 잊고 혼자 훌훌 떠날 수 있었을까. 애초에 다른 곳으로 가야 다시 숨쉴 수 있을 것 같은 관계라면 이미 이 도시의 나처럼 반쯤 죽어있는 관계는 아니었을까. 정말 카일리가 문제였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 때 나의 서울같았고, 중력이었던 그를 떠올리며 울컥이지만 결국 서울로 돌아온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무엇이 나이길 감히 바라지 않는 것,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지는 않는 것, 여행의 끝에도 내일이면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견딜 것. 돌아왔으나 돌아갈 곳을 잃었다. 대도시의 사랑은 이렇게 흐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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