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영 Apr 05. 2020

작고 확실한 극복법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요가원에서 온 문자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2주간 더 쉬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안 되는데, 그럼 한 달이나 못 가는 건데!

심지어 나는 교육원에 낼 대본 제출 때문에 한 달을 더 쉬었으니 이 정도면 겨우 익숙해진 자세들을 다 잊어버리게 생겼다.  

막상 일주일에 세 번씩 요가를 가야 할 때는 그 세 번도 힘들어서 한 번, 두 번씩 빼먹을 때가 많았다.

이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오니 요가가 너무 하고 싶다. 왜 행복한 순간에는 그것이 행복인지 알지 못하는지!


전에 없던 바이러스로 지구는 아니 지구 위의 인간은 위기를 맞이했다.

중국 공장이 가동을 멈추며 오히려 지구는 생기를 되찾고 있다고 하니 괴로운 것은 오직 우리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사회적 격리기간은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비대면이 익숙해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익숙했던 생활의 면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요즘은 벚꽃나무 밑을 걷기보다는 드라이브 스루가 대세라니 말이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있고, 일이 두배로 늘어난 사람들도 있고

개학이 밀리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아이들도 놀이터에 나가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회사 일이 늘었다. 잘리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좋은 봄날에 운동, 교육원, 스터디 모두 잠시 멈춤 상태다.

좋아하는 건 하나도 못하고 일만 왕창 늘었다.

새벽 출근을 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드는 날을 반복하며 우울모드로 생활을 꾸려나가던 중에 연차를 썼다.


연차를 쓴 금요일 아침,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난 시간이 아침 8시 30분이었다.  

창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점심에는 언니가 해준 밥을 마주 앉아 먹었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먹은 것이 포인트다), 오후에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책을 읽었다.

일요일에는 보고 싶다 말만 하던 영화 세 편을 몰아봤다.


아- 행복하다. 행복하다?


일상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 우리에게 생긴 이 예상치 못한 시간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해가다 보면 시간은 지나고 결국 이겨낼 것이다.

훗날 이때를 돌아봤을 때에도

방구석에서 우울하기만 했다는 말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했다는 것이

추억하기에 좋지 않을까.


“나 옛날에 코로나 유행일 때, 커피 400번 저어봤었다?”


뭐 그런 말들을 손자 손녀에게 해주는 날을 기대해보면 어떨까.

웃기긴 하는데 웃는 게 중요한 거니까.

벚꽃 밑에서의 크고 확실한 행복도 있지만

집 안에서의 작고 확실한 행복도 분명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