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나다움’을 지키기가 어렵다. 사실 회사에 있으면 나다운 게 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정도면 착한 거라고 믿고 살았다. 친구가 그러길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서 그게 버릇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착하면 착한 거지 노력해서 버릇이 된 건 뭔데.
착하기만 한 사람은 싫다. 착해지려 노력한 사람도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 지금은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이 가슴팍 안 쪽에 악함을 품고 태어났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서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바닥을 찍는 일이 매일 갱신된달까. 여기가 끝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하면서. 못된 말도, 행동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고 진짜 한다. 착하게 살고 싶은데. 나 되게 사소한 거에도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회사 놈들이 자꾸... 나를 뒤집어 놓는다. 성질대로, 되는대로 해버릴 때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리고 퇴근길에 반드시 후회한다. 참은 날 보다 안 참은 날이 후회가 더 길다. 싫다. 그런 날의 후회는 떨쳐내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드는지. 노력형은 이게 문제다.
난 후회가 싫고, 열 내는 것도 싫고, 매사 의연한 사람이고 싶다. 화도 우아하게 내고 싶고, 아영이는 참 잔잔한 수채화 같아 그런 말만 듣고 싶은데 (아마도 내가 생각한 착한 이미지는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인 듯함) 화도 우당탕탕 내고, 수채화는 커녕 그림도 못된 시뻘건 물감 같다.
친구들은 내가 전 보다 단단해졌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밤마다 머리맡에 명상록을 뒤적이며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하는지 안다면. 오늘도 많이 참았다. 참을 인 세 번씩 새기고, 분노의 대상이 상황인지 사람인지 구분 지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노력은 관두고 싶다. 내가 나를 다스리며 사는 거,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생긴 대로 살아도 막 살 수는 없고, 이왕이면 둥근 쪽이 나와도 남과도 덜 부딪히니까.
내 감정의 주인은 나라고 착각했던 시간들은 괴로웠다.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렸다 돌아오면 어디까지 다녀온 건지 뒤늦은 후회만 가득했었다. 혹시 감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감정 그 자체라면? 통제하려고 들수록 결코 잡히지 않지만 그냥 두면, 바라보고 있으면 알아서 잠잠해지곤 했다. 슬픔, 분노, 절망 이런 애들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지켜봐 줄 수 있지 않나. 한 걸음 물러나면, 그러기 위한 연습을 더 많이 하면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