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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Oct 19. 2020

휩쓸리지 않게

회사에서는 ‘나다움’을 지키기가 어렵다. 사실 회사에 있으면 나다운 게 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정도면 착한 거라고 믿고 살았다. 친구가 그러길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서 그게 버릇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착하면 착한 거지 노력해서 버릇이 된 건 뭔데.

착하기만 한 사람은 싫다. 착해지려 노력한 사람도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 지금은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이 가슴팍 안 쪽에 악함을 품고 태어났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서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바닥을 찍는 일이 매일 갱신된달까. 여기가 끝인  알았더니 아니었네 하면서. 못된 말도, 행동도 스스럼없이   있고 진짜 한다. 착하게 살고 싶은데.  되게 사소한 거에도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회사 놈들이 자꾸... 나를 뒤집어 놓는다. 성질대로, 되는대로 해버릴 때면 아무것도  보인다. 그리고 퇴근길에 반드시 후회한다. 참은  보다  참은 날이 후회가  길다. 싫다. 그런 날의 후회는 떨쳐내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드는지. 노력형은 이게 문제다.

난 후회가 싫고, 열 내는 것도 싫고, 매사 의연한 사람이고 싶다. 화도 우아하게 내고 싶고, 아영이는 참 잔잔한 수채화 같아 그런 말만 듣고 싶은데 (아마도 내가 생각한 착한 이미지는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인 듯함) 화도 우당탕탕 내고, 수채화는 커녕 그림도 못된 시뻘건 물감 같다.



친구들은 내가 전 보다 단단해졌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밤마다 머리맡에 명상록을 뒤적이며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하는지 안다면. 오늘도 많이 참았다. 참을 인 세 번씩 새기고, 분노의 대상이 상황인지 사람인지 구분 지으려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노력은 관두고 싶다. 내가 나를 다스리며 사는 거,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생긴 대로 살아도 막 살 수는 없고, 이왕이면 둥근 쪽이 나와도 남과도 덜 부딪히니까.




내 감정의 주인은 나라고 착각했던 시간들은 괴로웠다.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렸다 돌아오면 어디까지 다녀온 건지 뒤늦은 후회만 가득했었다. 혹시 감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감정 그 자체라면? 통제하려고 들수록 결코 잡히지 않지만 그냥 두면, 바라보고 있으면 알아서 잠잠해지곤 했다. 슬픔, 분노, 절망 이런 애들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지켜봐 줄 수 있지 않나. 한 걸음 물러나면, 그러기 위한 연습을 더 많이 하면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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