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본 급훈, 친구네 가훈, 아무렇게나 써낸 좌우명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한 번쯤은 있었다. 의미도 모르고 단어부터 배운 말. 믿음 하면 믿음, 소망하면 소망, 사랑하면 사랑. 읽고 쓰고 말하며 배운 것을 성인이 된 지금 다시금 그 뜻을 깨우치고 있다. 이것이 믿음, 이것이 소망, 이것이 사랑. 오래전 물려받은 ‘믿음, 소망, 사랑’ 은 이제야 빛을 발한다. 꿈꾸고 사랑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보다 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온 ‘믿음, 소망, 사랑’ 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닳도록 읽은 성경에도 나오니 말해 무엇하랴. 신은 믿지 않아도 이 단어에 담긴 힘은 믿고 싶다. 그릇이 큰 단어다. 담을 것이 많다.
2.
진심을 다한 일이 말 한마디로 짓밟힐 때
마구 밟혀 어질러진 그 자리, 남겨진 발자국 앞에서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할 때가 있다. 괜찮다고 내가 다 안다고 다독여봐도 아니다, 안 괜찮다. 내게 아무런 상처를 낼 수 없다고 되뇌어봐도 아니다, 상처 받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네가 이해해.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화살을 안으로 돌려도, 밖으로 돌려도 아픈 건 매한가지. 엉망인 자리, 그 위를 다시 꼭꼭 밟아 다진다. 단단해져라, 단단해져라. 진심은 반드시 닿고, 선함이 무조건 이긴다.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