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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Dec 05. 2020

나 홀로 집에 있고 싶어

집 밖에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오는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를 혼자 처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꼭 그런 날만 언니는 나를 불러댄다.

기분 안 좋으니까 말 시키지 말라고 했더니 삐쳐서 다툰 적도 많다.

‘너는 말을 왜 그렇게 하냐’부터 ‘싹수가 없다. 이기적이다.’ 외 기타 등등의 말이 날아오면 나는 항변한다.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으니 말해주는 건데 뭐가 이기적이냐고, 내버려 두면 되는데 자꾸 말 시키는 언니가 더 이기적이라고 쏘아붙인다. 나는 꼭 줄줄 설명해야만 아는 걸까 싶어서 답답하고 언니도 혼자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 나를 답답해한다. 싸우고 부딪히며 알았다. 같은 엄마 배에서 나왔어도 언어를 사용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성격부터 취향, 가치관까지 우리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만 느는 것이었다.



둘째인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첫째인 언니는 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 음식도 꼭 같이 먹어야 맛있고 혼자 먹을 때는 나를 생각해 음식을 시키고 남겨둔다. 직접 음식을 해서 먹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혼자여도 상관없고 귀찮으면 안 먹고 우주인 식사로 한 끼를 때우는 것도 퍽 나쁘지 않지만 언니와 같이 산 이후로는 혼자 뭘 먹어본 일이 손에 꼽힌다. 더불어 역대급 몸무게를 갱신 중인데 운동을 해도 소용없다. 먹는 게 더 많기 때문에.

매번 먹고 나서 후회하는 내 꼴을 보더니 이제는 내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냉큼 선포한다. “나 때문에 살쪘다고 원망하지 마라!”

그래. 내가 다 먹었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왜 자꾸 밤 열 시에 라면 먹자고 꼬시냔 말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 음식은 같이 먹는 게 더 맛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우리는 서로 물고 뜯기를 반복하다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제 눈치껏 맞춰주고, 빠져주기에 이르렀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 언니가 부르면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서 몇 차례 불려 나가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하고는 말한다.

“오늘은 컨디션 난조야.”

그러고 방에 들어가면 웬만해서 안 찾기는 한다. 나는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멍 때리거나, 책을 뒤적이다 일찍 잠에 든다. 이런 날은 운동도 글쓰기도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일종의 충전인 셈이다. 문 닫고 자는데 꼭 한참 뒤에 문 열어보는 언니도 이제는 귀엽다. (으이그!) 나도 충분히 혼자 있고 나면 슬그머니 나가 같이 TV를 보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어도 알지 못하는 것, 다름의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많이도 싸워댔다. 나는 다툼이 싫어 주로 회피하는 쪽이었는데 이해를 바랄 때는 입을 닫는 게 아니라 열어야 한다는 것을 언니와 살면서 배웠다. 할퀴고 상처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설득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말이다. 각자의 방 문을 제대로 열고 닫을 수만 있으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좋아하지만 혼자 살아 본 적은 없어서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어요.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언니가 있으면 살아남을 거고 없으면 재빨리 죽어야 할지도...

그래도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 홀로 집에’를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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