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전철에서는 멍 때리는 것이 좋다. 종일 혹사당한 뇌가 한곳에 집중하기를 거부하기에 영상과 활자, 음악 듣기보다는 주로 멍 때리기를 선택한다.
저녁은 각종 야채 가루와 단백질을 섞어 후루룩 마시는 것으로 때운다. 운동을 가지 않는 날에는 이유 없이 한 시간 가량 누워있고 운동을 다녀온 날에는 운동의 여파로 또 한 시간 앓아눕는다. 하루 중 유일하게 무엇도 하지 않는,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자유를 만끽한 뒤에는 벌떡 일어나 씻는다. 샤워 후 바르는 바디로션은 두 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둘 다 좋아하는 향이다.
헐렁한 티셔츠에 체크무늬 잠옷 바지를 입고 책상에 앉거나 침대 위 쿠션을 등받이 삼아 앉는다. 밖에서 언니가 틀어놓은 tv소리가 작게 들리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예민한 감각을 내려놓고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혼자인 시간을 사랑하고 또 언제든지 밖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고독은 좋지만 고립은 싫은 이유와 같다. 혼자가 아니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친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