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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Jun 23. 2021

글, 밥


대학생 때 쓰던 다이어리에는 당시 유행하던 버킷리스트가 적혀있었다. 거기엔 세계 여행을 다니고, 에세이를 쓰고, 패션으로 유학도 가고,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 하던 내가 있었다. 어떻게든 이뤄낸 것도 있었고 절반만 이룬 것과 이런 것도 바랬던가 싶을 만큼 낯선 것도 있었다. 소박한 꿈을 꾸었다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소박하지 않은 꿈이 아니었나 싶다. 분명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중 몇 가지를 여러 번 시도해보고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취할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몇 년 간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기타 배워서 노래 부르기’는  기타 학원 수강과 기타 구입 두 번을 반복하고 나서 고등학생이던 동생이 내 기타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자 엄마가 부숴버린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사라졌다.



일기를 일기장 밖으로 꺼내지 않았더라면, 더 나아가 우연한 계기에 드라마를 써야겠다고 교육원 문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버킷리스트에 적힌 다채로운 꿈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볕이 좋은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고 책상 앞에 앉는 일은 없었을 거다. 사람을 좋아하면서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에 대해 쓰고 쓰면서 고통받는 일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연민과 자기 긍정, 자학과 가학을 오가면서 울고 웃는 일도.


작년에 만났던 다정한 스승은 작가가 ‘되는’ 것에 몰두하지 말고 ‘쓰는’ 사람이 되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혹여 잊어버릴까 수첩에 적어왔다. 어쩌다 내가 이러고 있나 싶을 때마다 작가가 내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 된다.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쓴다는 점이.

쓰는 일은 나를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데려다 놓는다. 머무르고만 싶은 나를 밀고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의미 있게 나아가는 중인 거다.


작고 귀여운 월급을 포기한 채 글만 쓸 용기가 아직은 없고, 그 점이 나를 흔들어놓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욕심은 많고 돈은 없는 걸!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자. 낮에 벌고, 밤에 쓰고, 평일에 벌고, 주말에 쓰자. 삶이라는 게 무엇을 포기하고 취할지 선택해가는 과정인가 보다고, 그래서 사는 게 어렵고 무겁고 엿같은 건가 보다, 버킷리스트에 줄 긋는 일만큼 쉬웠으면 좋았으련만.

인생길에 안개가 꽉 꼈다 싶어 두통이 일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뇌가 맑게 개이면 관조할 수도 있게 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내 가장 큰 욕심은 해보니 이게 참 좋더라 하는 일들만, 사람들만 남겨놓고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빵, 떡, 면 없이 살 수 없는 탄수화물 중독자로 저탄 고지 다이어트만 시도하면 3일 만에 눈앞이 하얘지고 근육에 경련이 온다. 책에서는 탄수화물 금단증상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아침마다 현미 떡을 먹는다.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 끄적이는 일은 탄수화물이다. 얼마간 안 쓰고 살 순 있어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는 사이인 것이다. 쓰지 않고 있으면 불안해서 뭐라도 씹어야 아니 써야 한다. 밥이 되지는 않더라도.


그렇다고 의미가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하기 시작하면 홀로 땅굴을 파고 내려가거나 앞만 보며 내달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잘하고 싶어서, 이뤄내고 싶어서, 보여줘야 할 거 같아서.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멈춰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옆에 있는 사람도 보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보라고. 그러려고 쓰는 거라고. 살아있으려고, 살아가려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우주, 지구, 한국, 서울에 어느 한 동네에서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살아가다가 사그라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저녁에 셰이크를 먹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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