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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ug 09. 2021

배부른 슬픔

가만히 있고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읽었고, 읽으면서 자주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잘 있다가도 사소한 일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울고 싶어 진다.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눈물이 쉽게 차오른다. 시원하게 울어버리면 좋으련만. 대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순간 벅차올랐던 감정이 내려앉기까지. 엉엉 울고 싶다가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불행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지만 꼭 그래야만 슬퍼지는 건 아닌가 보다. 이유가 없는 슬픔도 있나. 아니면 존재 자체에서 오는 슬픔인가. 사라지고 싶다가도 살아있고 싶어.

나는 울고 싶었고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밥 먹자는 소리에 깨어 언니가 해 준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배부른 슬픔인가. 배가 부르면 부른 대로 슬픈 모양인가.

다정한 현실주의자들이 곁에 있으면 슬픔은 삼키는 게 아니라 먹는 것이 된다. 그들은 내 안의 소용돌이에 내가 잡아먹히기 전에 찾아와 늘 밥을 권하기 때문이다. 마치 밥은 먹고 슬픈 거냐 묻듯이.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치 슬픔도 먹고 소화시켜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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