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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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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Feb 18. 2018

다시 새로운 날

 특별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날들. 시간 속에 나는 있지만, 없는 듯하기도 한 매일. 현실과 이상 사이 어디쯤 발을 걸쳐놓은 채로 나의 매일은 허공에 떠 있었다. 숨 돌릴 새 없이 스쳐가는 시간이 아쉬워질 때쯤 조금 딴생각을 했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생각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졌다. 친구네 회사에 마케팅팀 팀원을 뽑는다고 해서 면접을 보러 갔다. 그곳도 그곳만의 힘듦이 존재한다고 했다. 물론, 그렇겠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꾸 의문이 드는 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면접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대화를 할수록 지금 이곳도, 그곳도 어느 쪽이 내게 더 좋은 선택이 될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특별히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견딜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걷고 싶었으나 바깥은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후로 이틀쯤 고민을 더 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퇴근을 하던 날, 문득 그래도 이만하면 견딜만하다고 느껴졌다. 더 해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고. 정말 하고 싶은 건 제대로 시작도 못해봤으니까. 내 선택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언제고 그만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간단해졌다. 아쉽지 않을 만큼 해보고, 아무것도 아쉽지 않을 때 그만둬야겠다고, 인생 별거 없으니까. 정답은 알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가야 하니까. 두 발 땅에 딱 붙이고.


카카오 택시로도 택시가 잡히지 않아 20분을 밖에서 달달 떨었다. 지하철 끊길 시간은 다가오고, 5분만 더 있어보고 안되면 지하철을 타야겠다 하던 그때 택시가 잡혔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며 차에 타니 기사님은 “제가 감사하죠.”하고 답하셨다.
밤늦게 택시를 타면 항상 집 근처가 차고지인 기사님들을 많이 만났기에 이번에도 그런가 싶어 먼저 말을 걸었다.


기사님, 영등포 근처가 차고지세요?
아뇨. 난 노원 쪽이에요. 반대편이지.
멀리 가셨다가 손님 없으면 어떡해요?
손님은 어디든 있지, 어디든 가야죠.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요?
택시가 안 가는 데가 어디 있겠어요. 다 운에 맡기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데로 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매일 그럴 수가 있나. 그래서 운수업 아니에요.


기사님은 그렇게 말하곤 허허 웃었다.
나도 그렇구나 하며 덩달아 웃었다.


시계는 어느덧 12시를 가리키고,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불이 켜진 빌딩들을 지나쳐가고. 오늘은 어제가 되었다. 다시금 새롭고 고요한 날. 이 순간 어디로,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면서 길을 나서는 두 사람이 앉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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