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갓난아기일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가 타 준 분유를 먹고, 할머니 품에서 자고, 할머니 걸음을 따라 걸으며 자랐다.
함께 걸을 때면 이렇게 걸어야지 하고 되레 할머니를 가르치고는 하하 웃던 날에서 한참을 지나 보니 이제는 내가 할머니처럼 걸음을 걷는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항상 할머니 팔을 잡고 잠이 들었다. 내복을 입은 할머니 팔을 쓰다듬고 한참을 비비다가 잠들면 그때서야 스르르 빠지는 손.
맞벌이로 바쁜 아들 내외가 맡겨 둔, 엄마 품에서 잠들지 못해 당신 팔 한쪽 붙들고 잠드는 손녀가 안쓰러워 매일 밤 그 손을 내어주었겠지. 그 온기와 감촉을 기억한다. 다 큰 어른이 돼서도 촉감에 사족을 못쓰는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뵈러 간지 꽤 오래되었다. 명절에 내려가서 병원에 들렀다. 할머니는 이제 누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일어나시기가 어렵다. 늘 까맣게 물들이시던 머리도 하얗게 새었다.
곁에 앉아 한참을 손을 잡고 있었다.
"할머니가 우릴 다 키웠잖아, 이 손으로."
보드랍고 따뜻한 손,
네 손 참 곱다 하며 쓰다듬던 손.
할머니 손도 예쁘다 하면 당신 손은 굳은살이 배여 흉하다던 그 손이 아기처럼 보들해졌는데 이제 손자 손녀 이름을 자꾸 잊는다.
내가 누구야 물으면 다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간다고 하니 조금만 더 있다가 가란다.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할머니 사랑해." 하고 속삭였다.
느리고 작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사랑해."
찰나의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기억에 남는 때가 있다. 일에 지친 밤 침대에 누우면 작고 느릿하게 속삭이던 그 말이 되감기 된다.
'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