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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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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Feb 24. 2018

1호선

1호선 콤콤한 냄새는 좋아하지 않지만 1호선을 그래도 싫어하지 않는 이유, 유독 1호선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일 때문이다.



무심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어르신들 앞에 서있으면 반대편 자리가 날 때마다 손을 가리켜 알려준다. 어떻게 그렇게 척척 보시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에요, 곧 내려요."하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감기는 눈. 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그렇다. 나는 그 무심한 듯 다정한 포인트를 좋아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이었나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가 "한 푼 도와주세요."하며 껌을 팔고 있었다. 유난히 밝은 목소리와 거절을 당해도 방긋 웃는 모습이 인상 깊어 안 보는 척 보고 있었는데 지하철이 흔들리는 동안 삐끗하고 넘어지셨다. 아저씨는 쉽게 일어나질 못하고 다들 멀뚱히 쳐다보기만 해서 도와드리려는데 나보다 먼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아저씨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말없이 아저씨 옷을 탁탁 털어주었다. 그리고 거듭 이어지던 아저씨의 감사인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렇게 다음 칸으로 가는 아저씨를 붙잡아

"아저씨, 여기 껌 하나 줘요. 괜찮아요?" 하던 아주머니도 있었다. 몇몇이 따라 껌을 샀다.
아저씨의 판매 전략이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마음에는 작은 진동이 일었다.
사람에 치이고, 다시 사람에 기대하게 하는 모습들. 감정을 다 잃은 듯 서있을 때마다 만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다정함. 무심함 속에 숨겨놓은 따뜻한 손을 건네는 사람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1호선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나는 1호선 냄새는 싫어하지만 1호선은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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