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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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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May 07. 2018

불안 앞에서

엄마는 신년이면 점을 보러 간다. 엄마 말로는 ‘좋은 건 좋은 거고, 나쁘면 피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한때는 맹신을 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무렵, 모처럼 토요일 자율학습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갔다가 거실에서 한복을 입은 낯선 아줌마가 제기 챙기는 모습을 봤었다. 누가 봐도 무당이었다. 엄마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거였다. 내가 그렇게 일찍 집에 올 줄은 몰랐던지 몹시 당황하면서도 아빠한텐 말하지 말라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고도 한동안 집 안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적이 붙어있기도 했고, 동서남북으로 쌀이 놓여있기도 했다. 엄마를 타박해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땐 우리 집이 엄청 힘들 때였으니까. 현실이 고달플수록 몸과 정신은 벼랑 끝에 내몰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동아줄처럼 내려온 점괘에 매달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썩은 동아줄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나도 최근에 점집을 혼자 찾았다.
2년 전에도 친구와 함께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주소를 물어보니까 웬 아파트 주소를 알려줘서 그대로 찾아갔더니 아파트 방 한편에 신당을 마련해놓은 곳이었다. 향냄새가 폴폴 나는 방으로 안내받아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금빛 휘황찬란한 장군님과 마주하고 있으니 그제야 점을 보러 온 게 실감이 났다. 곧이어 들어온 점 좀 본다는 아줌마는 푸근한 등산복 차림이어서 조금 깼었지만. 그래도 친구와 나는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서 아줌마가 해주는 말을 서로 열심히 받아써주기까지 했었다. 그때 취업이 안돼서, 남자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던 26살의 내게 점집 아줌마가 뭐랬더라? 착하니까, 좋은 놈도 만난다 그랬던 듯. 하지만 28살이 된 지금까지도 못 만나고 있다.  
 


그리고 2년 후, 28살이 된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점집을 찾았다. 혹시 신이 있다면 귀띔이라도 해줄까 싶어서.

궁금한 건 못 참고 생각하면 바로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점을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고 4일이나 고민하고 간 건 많이 참은 거였다. 얼마나 기대하고 설레었던지 모른다. 해방촌 언덕배기에 있다는 점집을 못 찾을까 봐 아침부터 서둘러서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占이라 쓰인 작은 간판만 있을 뿐 장군님도 없고, 선녀님도 없는 카페 같은 공간.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트렌치코트를 입고서 점을 봐줬다. 트렌치코트와 신점이라니, 신선한 조합이었지만 이번에도 조금 믿음이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다짜고짜 “혹시 미술 해요?”하고 물었을 때 미술의 ㅁ자도 모르는 나는 깊이 절망하고 말았다. 자꾸 미술이 떠오른다며 메이크업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해서, 나는 내 눈에 아이라인도 제대로 못 그린다고 했더니 일단 자신감을 좀 가지고, 푹 쉬라고 했다. 그런 식이었다.  
 


그녀 말대로 메이크업을 배워서 인생이 탄탄대로 꽃 길 걷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길을 일순간 점지해주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동아줄이 필요했구나.'



도망가고 싶었던 거였다. 불안하니까. 오롯이 내 몫인 선택과 책임이 버겁고 두려우니까.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해 해방촌까지 왔지만 도망친 곳에도 낙원은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게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다 흘려버릴 수 있었으니까.
근기가 생겨야 일도 하는 거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심리 상담 같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말은 대체로 이런 말이었다.  
‘뭐든 일단 부딪혀봐라, 완벽하려고 하지 마라.’
사십 분 남짓 야매 심리상담을 받은 대가로 오만 원을 냈다. 돈가스를 먹어도 다섯 번은 먹는 건데 한동안 먹을 수 없겠구나.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개운했다. 오지 않았다면 언제고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점을 한번 보러 가야 하나했을 테니 이제 그럴 일은 없지 않은가.

점집은 일이 풀리지 않아 찾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풀리지 않아 찾는 곳이었다.






해방촌 언덕을 내려오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올해 내 점 봤어?”

“점? 그거 다 맞지는 않더라. 뭔지 몰라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네 생각에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쪽으로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러다가 또 잘 안되면 어떡해?"
 
"뭘 어떡해? 나쁠 때 있으면, 좋을 때도 있고. 좋을 때는 나쁠 때 대비하면서 살고 그런 거지."
 
엄마는 사는데 쉬운 게 있는 줄 아냐며, 이제 겨우 인생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그랬다. 나는 고작 실패 몇 번했다고 시작부터 겁을 먹고 있었다.
다시 시작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무수한 고뇌의 시간을, 선택을, 그 후의 책임을 감내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했다.
이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가 정해준 대로 살게 아니라면 나답게 헤쳐나갈 수밖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여전히 선택 앞에서 주저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의심, 희망과 좌절을 오가며 하루를 산다. 그래도 어찌 됐건 살아있는 한 길은 계속 이어진다. 도망쳐봐도 제 자리, 결국 나에게서 나에게로 닿는 길이다.
그 앞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건, 선택하지 않건 내 자유이며 의지이다.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 얄팍한 희망에 기대어 가던, 아니던 그조차도 내 몫이다. 그러나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는 않고 싶다. 엄마 말대로 '이제 막 시작'이니까.






절대적인 존재에 기대어
힘든 일을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그리고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신은 보고 있을까.
보고 있다면 그는 분명 내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으리라.

“일단 뭐든 부딪혀 봐, 완벽하려고 하지 마. 어디 쉬운 게 있니? 네 인생 이제 겨우 시작이야.”

그래서 나는 요즘 불안 앞에서 이렇게 되뇐다.
‘어떻게든 길은 이어져. 그러니 마음껏 불안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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