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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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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Apr 03. 2018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매일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가 없어진다. 그 와중에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해서 밥은 먹고사는 거 같은데 나는 딱히 그 대열에 합류할 만큼의 열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퇴사를 감행했다. 이번이 네 번째 퇴사이다.



패션업은 3D 업종이다. ‘옷은 사 입을 때가 가장 좋다!’는 교훈을 얻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홀린 듯이 면접을 보러 갔었다. 그곳에서는 새로 시작하는 거니 이전의 경력은 쳐 줄 수 없다고 했다. 연봉을 깎는다는 말이었다.

‘저는 전에도, 지금도 신입인데요? 여기서 더 줄어들면 그건 최저 시급과 다를 바가 없다고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이러나저러나 박봉을 면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싶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면접을 보던 대표가 말을 이었다.



“난 네 그런 점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다짜고짜 그런 말을 들으면 당황스럽다.
이 자리에서 처음 뵀는데 벌써 마음에 안 드신다니 거 참 유감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고 다시 물었다.



“제가 지금 결정하면 바로 출근이에요? 제가 온다고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런 유약한 점이 마음에 안 든다고. 요즘 젊은 애들은 왜 이렇게 강단이 없어?”



요즘 젊은이로서 한마디 하자면 나는 당신들의 이런 태도에 질려버렸다. 정말 몰라서 되묻고 싶다. 신입은 열정만 먹고 삽니까? 나를 유약하게 만든 건 당신들이 아닙니까악.






면접을 보면서 받는 질문 중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은 꿈이 뭐냐는 질문이다. 다시 옷을 팔아 밥 벌어먹기로 하고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이사라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아영 씨는 꿈이 뭐예요?”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는 꿈이 없습니다."



대답을 하고 뿌듯하게 웃고 있는데 이사 옆에 앉아있던 차장이 나와 눈을 맞추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고개도 흔들었던 거 같다. 다른 대답을 하라는 무언의 몸짓이었다.
하지만 이미 입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 딱히 목표를 정해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영 씨, 사람은 꿈이나 목표가 있어야 해요. 자신의 분야를 정하고 날카롭게, 송곳처럼 만들어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글쎄 한때는 그랬었지만 더 이상은 아닙니다만.

그 순간 면접이 망했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꿈을 묻는 건 내가 인생에서 뭘 이루고 싶은지 묻는 질문은 아닐 테고 일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묻는 질문일 테다.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에서는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라고. 그러니까 회사라는 하나의 사회 집단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에는 개인의 꿈이랄 게 쉬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아니 원시시대 때부터 노동의 목적은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내가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하면 여긴 왜 왔냐고 물을 거면서 왜 자꾸 꿈을 묻는 걸까. 열정의 척도를 가늠하려고?

‘이사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제가 앉고 싶습니다!’라거나 ‘10년 뒤에는 마케팅, 브랜딩까지 손을 뻗쳐 영향력 있는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뻔뻔한 얼굴로 해댔으면 지금쯤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일이 꿈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꿈을 이뤄도 월급 받는 월급쟁이 신세를 면하지는 못 할 텐데 뻥을 쳐도 정도껏 쳐야지.

다 밥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거기 이사님, 입맛에 맞는 뻥쟁이는 찾으셨는지. 그나저나 이사님 꿈은 뭐예요?

물어나 보고 올 걸 그랬다.






나는 유한하다. 극단적으로 오늘은 살아있고, 내일은 죽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삶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여정이라 했다.
나는 이렇게 해도 죽고, 저렇게 해도 죽는다면 적당히 벌고, 적당히 행복하다가 죽고 싶다.

열정 같은 단어는 개나 줘버리고 싶다 이런 뜻이다.



나도 열정 비슷한 게 있었다. 근데 그건 영하 16도의 겨울에 압구정 편집숍을 떠돌며 시장조사를 다녔을 때, 황금 같은 주말에 신상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을 때, 옆자리의 과장님이 공황장애를 앓으면서도 회사에 꾸역꾸역 나오는 걸 봤을 때, 새벽 1시에 퇴근하며 창밖으로 한강을 보다가,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야근은 MD의 숙명이야.’따위의 운명론을 들었을 때, 그때마다 조금씩 타서 재가 돼버리고 말았다. 자기 위로나 변명같이 들려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노력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을 나오고, 회사를 다니고, 정해진 수순에 맞춰 목표를 정하고 남들 사는 것처럼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취업을 못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취업을 하고 큰일이 나긴 났다. 2년 사이에 네 번이나 회사를 관둘 줄이야.
퇴사를 밥 먹듯이 하는 나를 보며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넌 왜 그러냐 타박을 하면 그래서 지금 제일 답답한 건 나라고 답해줄 거다.


 

공부를 못하면 공장에 가는 줄 알고 컸다. 그런데 이제 와 보니 공장 다니는 내 동생이 나보다 더 돈이 많다. 내 월급보다 비싼 자전거를 할부 없이 사고, 밤마다 저 하고 싶은 게임도 마음껏 하고 노는 걸 보니 돈도 많은데 나름 행복도 한 거 같다.

어차피 남 밑에서 일하는 건 똑같은데 왜 어떤 일은 위험하고, 불안정하다는 이유만으로 일과 사람이 동일시되는 걸까. 뭔지 몰라도 단단히 잘 못된 거 같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요즘 실의에 빠져있다.

10년 동안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아무래도 불가능), 언제까지 ‘존버’ 할 수 있을지, 뭘 다시 배워야 하는 건지, 아니 뭘 또 배워? 밥 벌어먹고 살 기술도 하나 준비해놓지 못했는데 또 백수라니!

하던 걸 계속해야 하는 건지, 알바를 하면서 ‘자기계발’이라도 할까, 이번 생은 망한 거 같은데 아픈 건 싫어서 죽지도 못하고.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이나 쓰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벚꽃이나 보다가 집에 와서 잠이 들고, 또 눈을 뜨고, 괜히 사람인에 들어가서 1페이지부터 25페이지까지 뒤적거리면서 살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 살면서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해.’라는 말이나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한 뒤에는 전념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어요?’라는 말은 왜 폭력이 아닌 걸까?
오늘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에게는 그 말 또한 폭력인 것을 왜 모르는 걸까. 내가 맞아보니 아프던데.



‘청년, 이 길이 아니면 저 길로 가면 된다네. 꿈보다는 과정이 묘미지. 어차피 가다가 죽거든!’이라거나 ‘그 정도 살아봤으니 너도 알 텐데, 열심히 하면 너만 손해야.’하는 어른은 어디 없을까. 없으면 나라도 해야겠다.



일단 제가 먼저 전념이나 열정 따위는 앞으로 영영 알지 못 한 채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행복하고 불행하면서, 퇴근 후에는 꿈도 찾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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