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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Feb 22. 2019

느리게 오는 것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 나는 서울에서 가끔씩 경주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 안 본 지 너무 오래됐어, 이번에 내려가면 보러 가야지.’ 하면서 언제고 내가 가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것처럼.
막상 경주에 가서는 친구들 만나느라 할머니는 못 보고 오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 다음엔 꼭 뵙고 와야지 하면서 돌아오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에는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그때도 ‘할머니 보고 싶다. 내려가면 꼭 먼저 보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6월,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경주로 내려갔다. 소식을 받고서는 울었었는데 정작 돌아가신 날부터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울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해서 비몽사몽인 채로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준비했다.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얼굴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과 여기 누워있는 건 할머니의 껍데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때 울었던가? 아니 울지 않았던 것 같다.

화장지로 가기 전 할머니가 생전 다니시던 교회와 할머니 댁을 차례로 들렀다. 비는 오다 말다 했다. 나는 기도를 하면서 졸았다. 당장의 생리적인 졸음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화장지로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날 정도로 며칠 치의 잠을 몰아잤다. 화장지에서 다시 장지로 갈 때쯤 다행히 비가 그쳤다. 나도 그때는 깨어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왜 눈물이 안 날까 했다.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엄청 슬프지도 않았고, 꼭 다시 볼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지났다. 이제 할머니를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이따금 할머니를 떠올린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가끔씩, 계단을 오르다가도 문득 할머니 보고 싶다 하는 것이다.
그러다 코가 시큰해지면 괜히 코를 비비고 입을 앙 다물다가 알았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이제 정말 알게 된 거였다. 그랬다. 슬픔도 그리움도 더디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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