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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Nov 05. 2019

지금, 여기


회사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찔하다는 생각보다는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의외로 무섭지 않아서 그냥 잠깐이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보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때쯤 나는 늘 죽고 싶었다. 당장 죽어도 괜찮다고,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으면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며 말하던 날들이었다. 삶의 의미나 목적을 따지다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곤 해서, 의미도 모르는데 선택도 하고 책임도 져야 하는 일이 버거워서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가도 가도 제자리거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거나, 갈수록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삶이 너무 공허해요. 그냥 텅 빈 것 같아요. 와 닿는 게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 삶에 충만함을 느끼면서 사나요?”


“아영 씨는 언제 삶에 충만함을 느꼈던 거 같아요?”



의사는 매번 내가 하는 질문을 다시 돌려주었다. 나도 별 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언제 삶이 충만하다 느꼈을까. 언제였더라. 질문에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보고 오겠다며 상담실을 나왔다.

그 후 며칠 고민하다 찾은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직면하던 순간이었다.



27살 때였다. 오랜 친구의 결혼식 전 날, 나는 편지를 썼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죽을 뻔했지만 덕분에 삶이 생생해졌다. 힘들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자. 행복하게 잘 살아'. 뭐 이런 내용. 새 신부에게 축복과 행복을 빌어주기에도 모자랄 판에 삶과 죽음에 대해 구구절절 썼던 건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새 신부인 혜진, 희경 그리고 나까지 셋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졸업과 동시에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거리가 더 멀어지는 동안에도 꾸준히 만났다. 17살에서 27살까지 10년. 시간만 흐르고, 우리는 변한 것이 없다 생각했었는데 혜진의 갑작스러운 결혼 선언으로 벌써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됐구나 싶었다. 그저 어리기만 하던 17살 때로부터 갑자기 아주 멀리 와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다 백수가 됐을 때였다. 희경은 대학원을 다니며 계약직으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혜진은 부모님의 정년퇴임에 맞춰 결혼 날짜를 잡았다.


혜진의 결혼식을 2달 앞두고 여행 가자는 말이 나왔다. 함께 모은 돈이 60만 원이 넘었다기에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즈음이었니까. 우리는 곧장 제주도 행 티켓을 끊었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이상한 여행이었다. 비행기 표만 예매하고 아무도 여행에 대해 일절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출발 며칠 전에야 겨우 관광지와 숙소를 정했다. 출발 전날 연락 두절된 희경이는 복통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가있었고, 나는 비행기가 뜨기 한 시간 전에 혜진의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집에서 공항까지 40분이나 걸리는데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셋이 겨우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난관은 이어졌다. 렌터카를 찾아오는 길에 길을 잘 못 들어서 한 시간을 헤매느라 일정이 미뤄져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왔다는 것만으로 들떠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동네를 한 바퀴 걷고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바다를 보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셋이 사진을 100장쯤 찍었고,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사거리 앞에서 직진입니데이~"



신호가 바뀌는 틈에 내비게이션 위치를 조정하려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튕겨졌다. 눈을 뜨고 있는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죽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코앞으로 데려다 놓는구나. 기껏 제주도까지 와서, 아직 밥 밖에 못 먹었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다. 비틀거리며 차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 차는 트럭과 버스 사이에서 박살이 나있었다. 뒷좌석은 거의 날아갔고 앞 범퍼도 다 떨어져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폐차 직전의 차가 우리 차였다. 뒷 자석에서 희경이 비틀거리며 나왔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차 안으로 들어가 혜진이를 데려 나왔다. 119와 경찰이 도착하고, 조천 사거리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다행히 버스에는 버스기사 말고는 없었고, 트럭 운전수도 멀쩡했고, 우리도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다만 짧은 순간에 정신을 잃어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말도 못 하게 온 몸이 아팠다. 운전도 못하고, 몸은 아프고, 여행은 망했고, 그럼에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 이틀이 있었다. 아무도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거 알아? 내가 셀카를 찍었던 게 10분, 차 밖으로 나와서 사고사진을 찍은 게 겨우 12분이더라.”



희경이 사고 직전에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영원처럼 흘러가던 시간이 겨우 2분이었다니. 사진 속 희경이는 곧 닥칠 불행을 모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다치지 않고 살았음에 감사했다.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숙소 근처만 어슬렁거렸다. 숙소의 게스트들과 대화하는 동안엔 그들이 부럽고, 우리가 불쌍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어떻게  군데 부러지지도 않고 겉만 말짱한 것인지. 여행은 망했으니 먹는 거라도 실컷 먹자며 남은 돈을 먹는데 쓰는  그나마 위안이 됐다. 먹는 동안엔  아팠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풍경을 즐기는 일이었는데

' 우리에게 이런 일이?' 아쉬움과 함께 억울하고, 화도 났지만 나는 되려 사고가 나고서야 삶이 생생히 느껴졌다. 황당해서, 살아있어서, 맛있어서 그랬다.


사건은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친다.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목적도 방향도 흩트려 놓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살아있었다.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는 짧은 순간. 생의 모호함이 또렷한 생의 환희로 바뀌는 것은 찰나였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만족할 수 없을까 하고 반문하던 날들에서 막상 죽음의 문턱을 엿보며 얻은 깨달음이라면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였다.

친구가 알레르기로 입원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비행기를 놓쳤었다면, 우리가 길을 잃지 않았었더라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까? 상상해봐도   없었다. 나는 다른 경우의 수로 현재를 살고, 살아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제주도에서 돌아와서 일주일간 같은 병원에 입원을 했다. 너무 멀쩡해 보여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의사에게 사고 사진을 보여줬더니 바로 입원할 수 있었다. 뇌졸중 환자와 허리 수술 환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나일론 취급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 같이 몰려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삼시세끼 병원 밥과 간식을 먹고, TV를 보며 깔깔 웃었다. 17살 때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넣어두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즐거워했던 것 같다.

현실을 부정한 채 이상에 닿으려 애쓰기보다는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편이 좋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여행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인생은 오죽할까.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늘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나는 내 인생에 한 곳만 보며 있었다. 끝도 없는 걱정과 불안에 파묻혀 그것이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나만 괴롭고, 나만 슬픈 줄 알았으나 모두 괴롭고, 모두 슬펐다.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야.’



결혼식 날, 혜진이 식장에 입장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희경이와 둘이 앉아 울었다. 신부는 담담한데 청승맞게 우리 둘만 울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고,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던 것을 까맣게 잊었다. 나는 다시 공허하고 무의미한 날들을 버텨내고 있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말은 내일을 기대하고 싶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었다.

아마 지금 이 깨달음도 금방 잊고 행복과 불행을 문지방 넘듯 넘나들며 살겠지. 지나간 과거의 회환이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인생의 진리보다는 이 순간에 내가 머물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저 오늘 하루를, 천천히 그러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기로 한다. 다시 지금 여기, 순간을 살고 싶어 졌다.









언제 삶이 충만하다 느끼셨어요?  저는 '순간을 살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걸 느꼈던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뻔한 순간이었는데요.

그 때 적어둔 일기가 있어서 다시 써 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두면 잊지 않으려나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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