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슬프고 힘든 인생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에 몰두했던 그는 고통이라는 감정에만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또 다른 감정에 대해 쉬지 않고 들여다본 것 같다. 거듭된 연애의 실패와 배신속에서도 계속 사랑하고자 하였고, 가족의 죽음이라는 시련에도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을 간직하고 기억으로써 극복하려 한 게 아닐까. 결국에는 희망을, 밝은 빛을 그리게 되는 순간까지 맞이함으로.
뭉크의 일생에 걸친 작품에서는 인간의 삶이란 게 개인차는 있겠지만, 불안과 안정은 분리되는 것이 아닌 공존하면서
시간차를 다르게 안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며. 얼마나 복합적으로 변화하는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내 안에 불안과 공포, 괴로움에 순간에 있을지라도 내일은 안정이라는 아이가 또는 희망이라는 손님이 찾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에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이 복사되거나 희화화되고 상업화된 모티프인 뭉크의 <절규 The Scream >
절규는 단일 작품이 아니라 그림, 드로잉, 판화 등 세 가지 버전으로 존재하는 데, 그중 두 점이 그림인데 템페라와 유성 페인트로 크레용과 파스텔로 그린 그림으로 각각 노르웨이국립미술관과 뭉크뮤지엄이 소유하고 있다. 2012년 경매에서는 크레용과 파스텔로 그린 버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중 하나다. 이후 흑백 석판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약 30부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절규는 시대정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모티프로서 1961년 Time 잡지의 표지를 장식을 시작으로 앤디 워홀에 의해 실크스크린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미국의 풍자작가 피터 브룩스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면서 이를 사용했다고, 이후로도 세계적인 팬데믹에 직면한 집단적 불안의 이미지로 등장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와 화장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유머스럽게 묘사되기도 했다고 한다.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불안과 공포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대중 매체나 캐리커처부터 이모티콘에 이르기까지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절규>는 모든 버전을 판지나 종이에 그렸기 때문에 온도가 조절되는 어둡고 방에 보관하지 않으면 짧은 시기에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뮤지엄은 뭉크의 작품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해 보존하고 싶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가 보존을 위해 노출시간을 제한하는 여러 버전의 절규를 회전 전시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4층 에드바르 뭉크 인피니티(Edvard Munch Infinite)에서 회화, 소묘, 석판화 형태로 매일 교대로 전시되고 있다. 뮤지엄에 방문하게 되는 사람들마다 어떤 버전의 절규를 보느냐는 그날 전시시스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파스텔화 버전이 전시되고 있었고, 템페라 버전은 국립노르웨이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석판화 버전은 현재 서울 한가람미술관에서 <비욘더 스크림>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매일 줄 서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오슬로를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그 줄 어딘선가에 서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뭉크는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버전으로 지속적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모티브 중 하나인 아픈 누나 소피를 그린 <아픈 아이>는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는데. 거친 그림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민감하게 묘사된 슬픔은 결국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소녀에게서 애잔하고 가엾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면, 뭉크가 여러 해를 두고 소피를 그리워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까지 그녀를 그려야 했을 그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얼마나 기억해야 하는지...
아픈 아이에게서 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내 예술의 돌파구였습니다.
- 에드바르 뭉크
뭉크미술관은 단일 화가 뮤지엄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최대의 컬렉션 규모라고 한다. 박물관이 소장한 뭉크의 회화, 판화, 드로잉이 무려 28,000점!! 층마다 뭉크의 작품들이 콘셉트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가끔 예술가들이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실제로 작업하는데 몰두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된다.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서 대략 1년 정도 머무르면서 무려 200여 점을 그렸는데, 우리가 아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같은 대작을 이틀에 한 작품은 그렸다는 것이니, 식사시간 외에는 그림만을 그렸다는 뜻이니까.
연주가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대부분은 몇 시간의 일탈도 허락되지 않는 매일을 똑같은 루틴 안에서만 살아간다. 그들의 작품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매 시간을 갈아놓은 영혼의 결과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인은 주말이나 휴가라는 규칙적인 쉼을 갖지만 위대한 예술가의 삶에서 쉼이란 어떤 것일까.
일과 일상이 분리되는 것인가? 구분된다면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일까?
최근 2022년 6월 11일에 문을 연 노르웨이 국립 박물관은 북유럽 최대 규모의 미술관으로, 오슬로 시내에 떨어져 있던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국립장식박물관, 건축박물관, 현대미술관까지 4개의 독립 기관을 합병해 한 공간에서 많고 다양한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컬렉션을 포함하여 노르웨이 예술과 건축, 디자인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의 예술 작품을 시간순으로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데, 규모가 워낙 방대해서 전체를 둘러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우린 오전부터 점심 먹고 오후까지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구성에 지루할 틈이 없을뿐더러,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관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어보는 신나는 미술관 놀이터였다.
뭉크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등 인상주의 작가의 명작과,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뿐 아니라 노르웨이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안나-에바 베리만(Anna-Eva Bergman)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20세기 아티스트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과거 아름답고 거대한 풍광을 담은 그림들은 이후 여행길에서 자주 현실 풍경으로, 거리나 공원 곳곳에서 조형물로 반갑게 나타나곤 했다.
그림 속에서 뭉크가 겪어낸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내 인생도 파노라마처럼 지나쳐간다. 감당하는 삶의 무게는 다르고 이겨내는 힘도 다르겠지만 결국에는 태양을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