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eit Sep 21. 2024

뭉크가 질투한 비겔란, 그가 노래하는 인생

esprit



.

야외 걸작,

비겔란 조각공원과 비겔란 박물관

Vigelandsparken & Vigelandmuseet



홀멘 콜렌 스키 점프장,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키스테포스 뮤지엄, 오슬로 공립도서관, 오슬로시청... 오슬로에는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나 많았지만, 우리는 허락된 시간에 맞춰 선택을 해야 했고 뭉크에 집중하기로 했다. 뭉크뮤지엄, 노르웨이 국림박물관 다음으로는 그의 <절규>가 탄생하게 된 에케베르그 조각 공원과 뭉크도 질투했다는 비겔란을 만나러 비겔란조각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뭉크때문에 시작된 노르웨이였지만 비겔란 파크는 상처 가득한 공허한 일상에 위로를 건네준, 이번 여행의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구스타프 비겔란 Gustav Vigeland 은 타고난 로비스트였다고 한다. 그는 기존에 일하던 스튜디오가 철거될 상황이 되어 새로운 일할 장소가 필요해지자, 오슬로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여 그의 모든 예술 작품을 기부하는 대가로 집과 스튜디오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제공받은 집과 스튜디오는 오늘날 비겔란박물관이 되었고, 더불어 작업한 작품들로 지금의 조각공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프로그네르 공원의 분수 프로젝트였던 것을 비겔란은 조각 공원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면서 공원의 설계와 건축적 윤곽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담당하며 챙길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40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화강암, 청동 및 연철로 만든 200개 이상의 조각으로 구성된 비겔란 일생의 작품은 연간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노르웨이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비겔란 연철문 조각



내 삶에 던져진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사람들 소리로 방해받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비겔란의 작품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때가 하필이면 분수대가 공사 중이던 시기라서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분수를 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정문을 통과하면 청동조각이 배치되어 있는 다리와 분수대를 시작으로,  8개의 단철문을 통해 들어가는 모노리스와 화강암 조각들로 구성된 모노리스 구역으로 이어진다. 공원을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하이라이트인 모노리스를 먼저 볼 수 있도록, 우리는 높은 곳에 위치한 후문을 통해 입장해서 정문을 향하는 동선을 선택했다.  



The Vigeland Park



모노리스 구역을 지키고 있는 남녀가 조각된 단철문 The Wrought iron gate은 심플한 선을 통해 바깥쪽에서는 모노리스를, 안쪽에서는 시간을 통과하는 계절을 통과한다.

탄성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비겔란조각공원이 많이 회자되는 그 중심에 있는 모노리스 THE MONOLITH 다. 비겔란은 생전에 이것은 자신의 종교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The column is my religion


노르웨이 피오르 채석장에서 가져온 230톤에 달하는 돌로 만들어진 모노리스는 하나의 블록으로 조각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나의 프레임에도 잡히지 않는 거대한 기둥은 비겔란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무려 17m 높이로 서있다.  모든 연령대의 121명의 인간 형상이 서로 매달려 떠다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꿈에 가까운 상태라고 보이며 부활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나타낸다고 한다.

모노리스를 둘러싼 계단에는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순간들이 묘사된 35개의 인간군상 조각이 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THE MONOLITH





길은 분수대 THE FOUNTAIN에서 장미정원을 지나 다리 The Bridge로 이어진다.   


분수 중앙에는 서로 다른 나이대의 남자 6명이 큰 분지를 지탱하고 있는데, 마치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접시처럼 생긴 분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흘러 나무조각들에게 들어가 의미를 완성하는 건데, 오늘은 공사로 어수선한 모습만이 보인다. 그저 상호작용하는 아름다운 분수를 상상해 볼 수밖에.

주변 난간에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얽은 나무로 시작하여 나무 자체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해골 인물이 있는 나무로 끝나는 인류의 역사가 20개의 나무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갤러리의 네 벽에 있는 60개의 부조에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를 거쳐 노년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분수를 지나면 다리 위의 인생이라는 주제를 담은 청동 조각상이 보인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과 여성이 만남부터 사랑, 출산과 양육으로 이루어진 삶의 순환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들을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상은 화난 소년 The Angry Boy (노르웨이어로  Sinnataggen)이다. 이 청동상은 수천 명의 관광객이  매일 이 소년의 손을 만져 이로 인해 심하게 마모되고  있다고 한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에 가면 자주 보거나 하게 되는 가볍게 재미있는 경험으로만 여겼는데, 이런 행동으로 인해 예술의 원형을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공공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The Bridge


오슬로 여행을 와서 비겔란이 노벨평화상 메달을 조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벨의 다른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상을 위한 메달은 스웨덴 메달 조각가 에릭 린드버그가 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 메달을 작업하는 동안 편지를 통해 소통을 했고, 린드버그는 그 과정에서 비겔란에게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노벨뮤지엄에서 보았던 메달과 노벨평화상 메달은 사뭇 다른 이유가 작가가 다른 것 때문이었던  것.

노벨상중에 평화상만을 노르웨이에서 시상하게 된 이뉴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노벨의 개인적 결정과 노르웨이가 스웨덴과 달리 군사적 전통이 없었다는 평화적 성향, 당시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노벨상 중 평화상만을 노르웨이에서 나눠 시상하듯 메달도 평화상 메달만 노르웨이 작가 비겔란이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린드버그가 디자인한 메달은 세련되거나 디자인스럽다면, 비겔란이 디자인한 평화상메달은 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보인다. 왠지 가장 적절한 작가와 메달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인정받은 그는 이후에 노벨의 기념비적인 흉상도 만들었다고 한다

여름엔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이 보관되어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에 비겔란 조각을 확인하러 가봐야겠다!!!





비겔란이

노래하는 인생


비겔란은 인생이라는 주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우울, 헌신, 황홀함, 깊은 고통, 가끔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기쁨은 거의 표현하지 않았으며, 그의 예술이 보편적이며 시대성을 초월하기를 원했기에 계급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의상을 없애고 나체로 조각했다고 한다. 또한 조각공원의 작품에는 이름을 붙여놓지 않음으로 관람자 스스로가 해석을 하게끔 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석해도 괜찮아하는 편안함을 준다.


이탈리아의 대단한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멀리 있는 신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프랑스의 로댕의 작품 앞에서는  그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표현에 압도되어 버린다. 스위스의 자코메티의 극적으로 마른 형태의 조각에서는 삶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다.

이곳 노르웨이의  비겔란이 기억에 남는 것은 신과 예술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생을 위한 다정한 노래이기 때문이 아닐까.





단철문 The Wrought iron gate



이전 05화 뭉크의 <절규> 속으로! 뭉크의 언덕에 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