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
우리의 여행은 수도인 오슬로를 시작으로 서쪽 스타방에르, 베르겐과 플롬, 북쪽으로는 트론헤임, 로포텐, 트롬쇠를 향한다.
오늘은 아쉬움이 가득한 오슬로에서 떠나 노르웨이 남부내륙을 가로질러 서남쪽 해안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이곳뿐 아니라 여행 중 경치가 좋은 노르웨이 길은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나 2차로가 대부분이고, 중앙선이 없는 도로나 유료도로도 많았다. 피오르를 따라가는 루트이다 보니 조금 높은 산이다 싶으면 터널이 나타났고, 좁기도 하고 구불구불하다. 운전도 조심스럽게 해야 했고 능숙하지 않으면 진땀 나는 길들도 꽤 있는 편이다. 풍경에 매료되어 자주 차를 세웠던 탓도 있겠지만, 이동거리는 구글이 계산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를 향해 솟아오른 피오르가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한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절벽 녹음의 사이를 타고 폭포수가 짙푸른 물결 위로 쏟아지고 안개와 섞여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맑은 날의 깊고 고요한 피오르와는 또 다른 맛의 풍경이었다. 차츰 풍광에 익숙해짐에 따라 짓궂은 날씨의 아쉬움보다 내일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날씨가 좋았다면 몇 분 단위로 차를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노르웨이 자연이 주는 놀라운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가파른 산과 호수가 사라지고 낮고 넓은 평야와 고요한 바다, 대서양이 보인다. 오전과 오후의 풍경은 마치 다른 나라로 이동한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트리하우스, 트레크로나 TREKRONÅ는 이곳 오그나 Ogna에 있다.
오그나를 품고 있는 예렌 Jæren 지역은 노르웨이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곳으로, 끝없이 넓게 펼쳐진 하늘이 바다에 가깝게 닿아있고 일 년 내내 아름다운 해변과 모래언덕이 있다. 내륙의 피오르 지형과는 극명하게 대조적인 풍경이다. 노르웨이국립뮤지엄에서 만났던 노르웨이 풍경화가들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많은 작품으로 남겼을 정도로 이 지역의 자연은 노르웨이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 그럴 수밖에!!!
조금만 더 이동하니 산과 숲이 가까이 다가왔다. 앞에는 강이 흐르는 소나무 숲, 이곳 트리하우스에서 밤을 보낸다. 위치도 몇 마디 설명으로만 알려줄 뿐 지도도 제공하지 않고 주소도 알려주지 않는다. 주차 후에 각자의 짐을 둘러메고 거의 1km 가까운 거리를 걸은 후에야 나무사이로 숨겨진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몇 번의 잘못된 길을 되돌아오면서 ‘오늘 우리 잠이나 잘 수 있는 걸까?’ ‘차로 돌아가 마을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대로 길을 잃으면 숲에서 어떻게 하지?’ 등등 요란한 동요의 시간을 보내고 나자, 숨은 그림 찾듯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노곤함이 몰려왔지만 그럼에도 그림 같은 오두막집은 불끈 힘을 솟게 했다.
그린과 옐로, 두 개의 캐빈은 숲 속에서 서로 시선이 부딪히지 않을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높이가 다른 언덕에 있다. 친자연적인 소재인 노르웨이 나무로 건축되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향이 은은하게 전해져 왔다. 무리가 묵은 그린 캐빈은 전용 발코니와 북유럽 스타일의 주방, 욕실 그리고 작은 거실 공간이 갖추어져 있고, 위에는 싱글, 아래에는 더블 침대의 이층 침대가, 더블 침대 아래에는 추가되는 인원을 위해 풀-아웃 침대가 있어서 가족이 와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 보인다. 좋아하는 영화를 스트리밍 할 수 있는 와이파이와 BOSS 스피커, 그릴을 즐길 수 있는 캠프파이어 장소가 있고, 야외 온수 욕조와 우리는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해 이용하지 못했지만 실내 사우나가 있는 미니 스파까지 있다.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며 요가를 할 수도 있고, 태양을 아래서 책을 읽거나 해먹에서 낮잠을 자거나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뒷마당이 있다. 시간에 쫓기는 해외여행자가 아니었다면, 자전거를 빌려 아름다운 오그나와 지역을 둘러보는 사치를 누렸을 텐데. '한 달 살기'를 꿈꾸게 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숲에서 노을을 기다리며 산책을 하고, 사우나를 즐기는 옐로 캐빈의 이웃과 인사를 나누었다.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고기를 굽고 오슬로 맥주를 마시며 노르웨이 첫인상에 대한 수다를 떨며 밤을 기다렸다. 노르웨이에는 각 지역마다 제조해서 유통되는 맥주가 많이 있는데, 이후에도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방문하는 지역맥주를 꼭 챙겨마시곤 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서쪽해안으로 불게 저무는 태양의 그림자를, 밤하늘에 빛나는 반짝이는 별빛쇼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하늘은 구름을 잔뜩 머금고, 고위도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백야에 가까워지고 있어 밤이 되어도 어두운 밤은 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하얀 밤이었다. 지저귀는 새들 소리로 잠을 깨었을 때를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리고 조용한 아침 공기였다. 별빛 속삭임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두근두근 기다렸던 나무 꼭대기 오두막에서의 하룻밤은 설레면서도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여행에서 유니크한 숙소는 그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나 문화만큼 또 다른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고 믿는다. 물론 건축이나 역사, 문화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여행예산에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처음 여행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주로 현지인 집에 묵으면서 그 나라의 집을 구경하거나 가성비와 교통이 편리하고 평이 좋은 호스텔을 주로 이용했었다. 여행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잘 쉬는 것이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면서 가능하다면 숙면과 맛있는 조식, 즐거운 쉼이 가능한 좋은 숙소를 찾게 되었다. 더불어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 중세성을 호텔로 개조했거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콘셉트를 가진, 그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와 가치를 가진 숙소의 경험을 반드시 챙기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숙소가 떠오른다.
이탈리아에서 포토밭과 올리브 나무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토스카나 농가에서 묵었었다. 저녁노을을 지는 포토밭을 산책하고 유기농 와인과 올리브유로 요리된 이탈리아식 가정식을 먹었었다. 최근에는 와이너리에 와인투어와 함께 숙박을 제공하는 리조트 개념의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몇 곳을 찜해두었다.
중세에 지어져 오래된 문과 클래식한 발코니가 있고 르네상스식 가구와 벽지로 꾸며져 우리를 중세에 머물게 해 주던 피렌체 호텔. 하얏트 호텔이 일반호텔과는 다른 럭셔리 부티크, 디 언바운드 컬렉션을 별도로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볼 땐. 피렌체에서 제대로 르네상스를 제대로 품은 곳은 포시즌즈 호텔 Four Seasons Hotel Firenze 이다. 하지만 어마무시한 숙박비가 부담이라, 정원미술관을 구경하고 차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었다.
정통 스페인식 18세기 궁전을 호텔로 개조한 세비야 호텔은 프라이빗 리셉션에서부터 우아한 테라스, 궁전 같은 객실… 내가 거쳐간 호텔 중 가장 고급스러운 럭셔리를 경험하게 해 준 곳 중 하나로, 21세기에 들어선 정통 안달루시아의 호사스러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 호텔을 이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여행자와 독립적인 정신을 추구하는 호텔 커뮤니티 Small Luxury Hotels of the World™(SLH)를 추가로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모든 숙박을 '그저그저'에서 '최고'로 바꿔놓는 세계 각지에서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어마어마한 호텔들이 소속되어 있다. 가격대의 부담만 지운다면 정말 무조건 이용하고 싶은 끝내주는 호텔들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찾아보는 곳이 되었다. 가격대는 사악한 편이라 실행이 어렵지만... 하지만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를 간다면 꼭 이용을 해보고 싶다!!
건축에 관심이 많던 내가 반드시 가야만 했던 마드리드 호텔. 세계 최고의 건축가와 디자이너 스튜디오 19개를 한데 모은 프로젝트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노먼 포스터, 자하 하디드, 장 누벨, 아라타 이소자키,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이 각 층마다 다른 객실 콘셉트로 최고의 디자인과 현대 건축을 결합한 공간을 만든 대담하고 혁신적인 호텔이다. 우리는 자하 하디드의 층에 투숙했는데, 바닥과 벽은 직선이 없는 곡선으로 이어지고 오로지 흰색만 존재하는 룸이었다. 지금도 그 독특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매일매일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층에 머물러 보고 싶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가는 날이 온다면 당연히 이호텔의 매일 다른 층에 머물 것이다!!!!
노르웨이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캐빈 형태의 숙소가 유명한데, 울창한 숲이나 높은 산들 속 나무 위에 지어진 트리하우스, 주로 스키 리조트 근처나 피오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전통적인 통나무집과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현대적인 캐빈이 있다.
유명한 명소로 가는 트레일이나 국립공원, 아름다운 루트 곳곳마다 자연을 최대로 보존하면서도 활용한 숙소들은 눈을 뜨면 잊히지 않을 만큼 경이로운 전망이 눈앞에 펼쳐질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친환경적인 자재를 사용하여 지어진 멋진 건축물에 북유럽특유의 절제되면서도 탁월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소품하나하나까지도 뛰어난 감각으로 가득하다.
숙소의 대부분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관광 가이드와 연계하여 카누나 낚시, 트래킹과 같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호텔처럼 객실수가 많지 않지 않고 현지인들이 선호해서 빠르게 매진이 되니,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
우리는 이 멋진 숙소들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해 보고자 서둘렀고 가능한 몇 곳을 예약했다. 다만, 대부분의 숙소가 자연 외딴곳에 위치해 일정을 여유하게 잡아야 하고,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거나 차량만으로는 가까이 접근이 제한되어서 도보나 트래킹으로 일정 거리를 이동해야만 하는 곳이 많다. 우리가 선택한 캐빈 역시 꽤나 걷고 언덕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간단한 짐을 지고 이동했음에도 캠핑이나 트래킹 등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지 곳이었다. 다른 단점은 노르웨이답게 5성급 호텔과도 차이가 크지 않을 정도로 비싸다는 점이다.
시끄러운 도심 속 평범한 호텔을 벗아나 이토록 빛나고 특별한 추억을 갖게 해 주는 숙소의 경험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